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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순간 여백을 가르는 선…깊어질수록 더 단순해집니다”

한국 선화의 맥, 성각 스님

  • 국제신문
  •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  |  입력 : 2017-11-10 19:29:02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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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일어나 선화로 일과 시작
- 채색 않고 먹의 농담으로만 표현
- 50여 전시로 예술적 가치 알려
-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수행
- 계율 지키기도 소흘해선 안돼”

“선화(禪畵)는 수행의 방편이자 세상으로 건너가는 뗏목이었습니다.”
   
부산 남구 부산박물관에서 열린 중국 대표 화가 치바이스(齊白石) 기획전에서 만난 성각 스님. 곽재훈 전문기자 kwakjh@kookje.co.kr
선화의 대가 성각 스님(경남 남해 망운사 주지, 부산 수영구 원각선원장)이 최근 ‘제60회 부산시 문화상’ 전통예술 부문을 수상(본지 지난달 24일 자 29면 보도)했다. 스님은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9호 선화 기능보유자로 사라져가는 한국 선화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를 받았다. 1995년 이래 ‘선서화, 여백의 미를 만나다’ ‘과거 천년 현재, 미래 천년 현재’ ‘선서화 특별 기획전’ 등 50여 회의 전시를 통해 선화의 예술적 가치를 알리고,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전개한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화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심신일여(心身一如) 수행의 한 방편이자 참선의 결과물이다. 성각 스님은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예불과 참선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선화를 그리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지난 9일 만난 스님은 “뭔가 깨달음이 올 때 순간적으로 그 이치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성각 스님은 전통 선화에서 진일보해 山(산), 동자상, 분타리화(하얀 연꽃)를 즐겨 그린다. 선화의 주요 소재인 달마상은 익살스럽고, 동자승의 미소는 해맑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백미는 일원(一圓)상이다. 둥그런 보름달처럼 넉넉한 일원, 원융무애(걸림 없이 두루 통하여 일절 거리낌이 없음)한 세계를 그렸다. 채색하지 않고 먹의 농담으로만 표현하는 방식도 성각 스님 선화의 특징이다.

   
성각 스님의 선화 ‘산(山)’.
스님이 선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30년이 넘었다. 출가 전 만화가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 아버지를 통해 김해 영구암 화엄 스님을 만난 일이 인연이었다. 화엄 스님은 이후 김해 동림사를 창건했다. “화엄 스님이 큰 붓으로 달마를 쳤다. 큰 붓으로 둥글둥글한 얼굴과 섬광 같은 눈, 부리부리한 코, 강한 입술을 그렸는데 작품이 마치 살아있는 듯했다. 요즘 말로 하면 ‘카리스마’가 있었다. 당시 만화 작가로 활동하던 나는 그림에 자신감이 있었는데도 스님의 그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성각 스님은 회상했다.
산을 동경해서 즐겨 찾고, 산에 절이 있으면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 품이 그리워지고 좋아지니 세속의 연과는 점차 멀어졌다. 출가한 스님은 남해 화방사에서 수행하다 당시 망운암(현 망운사)에서 화엄 스님의 화맥을 이어 선화를 계속 그렸다. 그곳에서 스님 예술 세계에 변곡점을 제공한 인연을 만났다. “당시 송석구 동국대 부총장이 우연히 망운암에 찾아왔어요. 작품을 하고 있는 걸 보더니 ‘이거 아니야’ 하는 겁니다. ‘장학금을 줄 테니 대학에 와서 공부를 하는 게 어떻겠는가’하고 제안하더군요. 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선화의 세계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성각 스님은 이후 동국대 선학과,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불교미술 전공)을 졸업했다.

스님이 선학 공부를 하며 깨친 선화의 핵심은 ‘여백의 미’였다. “그동안 복잡하게 그렸구나 싶었어요. 이게 아니구나, 들어내야겠구나. 선화는 깊어질수록 더 단순해집니다. 종국에는 점 하나도 없죠. 진짜 여백의 미, 백지 예술이 종지부입니다.”

“참선하고, 이론을 배우는 것과 함께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고 스님은 강조했다. 스님은 “위대한 부처님들은 계법을 존중하고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에 성불할 수 있었다. 계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선화도 탄생하지 않는다. 엄격한 틀 속에 들어앉아 마음을 관조할 때, 그 깨달음을 얻을 때 나오는 원, 사람 하나, 점 하나가 선화”라고 말했다.

스님은 부산시 문화상 시상식에서 “사무치도록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사실, 이 소감에는 주어가 빠졌다. 지난달 초 돌아가신 ‘어머니’다. 스님은 영구암부터 화방사, 망운사까지 40년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쩌면 어머니가 40년간 스님을 돌봤다. 스님은 “어머니는 엄격한 호법신장이었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지 않고 10분만 늦어도 문고리가 남아나질 않았다. 어머니는 관세음보살이었다. 동국대를 다니며 밤늦게 남해에 도착해 산길을 걸어 망운사로 올라갈 때면 중턱에서부터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손전등이 보였다. 어머니의 엄격한 통제와 사랑이 있었기에 승가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슬픔을 삼켰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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