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연비 복원 결심하다 연구
- 오랜기간 행적 쫓아 총망라

- “황폐해진 고려 재조하려했던
- 뛰어난 사상가이자 역사가
- 불교도시 부산 관심 가져주길”

보각국사 일연(1206~1289)은 ‘삼국유사’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불어 한국 고대사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조명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지만, 정작 그 자신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부산대 채상식(사학과) 명예교수가 연구실에서 일연에 관한 연구를 총망라한 ‘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한국 중세사와 불교사의 권위자로 꼽히는 부산대 채상식(사학과) 명예교수는 오랫동안 일연의 행적을 좇았다. 그가 일연에 관한 연구를 총망라한 ‘일연, 그의 생애와 사상’(혜안)을 펴냈다. 채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청주사범대학(현재 서원대)를 거쳐 1981년부터 부산대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연구했으며, 지난달 정년퇴직했다. 채 교수를 만나 책의 발간 의미와 일연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일연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우연입니다. 대학원 시절 서울대 규장각의 해제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때 인각사비 탁본을 보게 됐어요.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 세워진 일연비(인각사비)는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의 글씨체로 새겨 예부터 귀한 비석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탁본 작업을 거치며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어요. 인각사비 탁본이 워낙 많고, 필사본과 탁본이 다른 부분도 있었죠. 그래서 인각사비를 제대로 복원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일연에 관한 연구로 이어졌어요.”

채 교수는 여러 장소와 사람이 보관하던 인각사비 탁본을 모아 원형 보존에 앞장섰다. 2006년 일연 탄생 800주년을 기념한 인각사비 복원에 기여했고, 공로를 인정받아 일연학술상을 받았다. 또 그는 해인사 대장경 서재에서 일연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역대 연표’를 발굴해 1986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번에 낸 책에는 이런 과정이 상세히 기록됐다.

“역대 연표는 역대 왕을 연표로 정리한 것으로, 역사서를 쓰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연의 역사 연표를 발굴함으로써 일연이 준비를 미리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죠.”

책에는 이뿐만 아니라 일연의 생애와 활약상, 성격, 사상적 경향과 특징, 삼국유사 찬술의 의미 등 일연에 관한 깊은 내용까지 자세히 들어 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일연은 어떤 인물일까?

“일연의 행적을 좇다 보니 그가 매력적인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연은 경상도 장산(현재 경북 경산시)에서 태어나 출가 이후 참선 수행하는 선승으로 20년 이상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남해 대장경 조판 작업에 참여하며 사상과 학문이 크게 도약하죠. 교학, 밀교뿐 아니라 유학, 제자백가 등 다양한 사상을 공부하며 사상가이자 역사가로 눈뜨게 되지요. 이후 국존의 지위에 올라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고요.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아 어지러운 시대였어요. 일연은 말년에 운문사로 내려오면서 피폐한 삶을 사는 백성을 목격하고, 신앙적으로 관음신앙을 강조하고 책을 찬술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런 노력이 삼국유사에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국가와 국왕 중심의 역사관으로 권신을 비판하고 단군으로부터 민족사의 체계를 정립하려는 태도를 보인것을 보면 그가 고려를 재조(再造)하려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실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총관세찰’, 즉 거대 담론을 보면서 세밀한 것을 관찰한 사상가이자 역사가로 뛰어난 면모를 보였죠.”

채 교수는 일연에 관한 연구가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중세 불교사에 관한 연구를 정리해 책으로 펴낼 계획도 갖고 있다.

“경상북도에서 삼국유사를 번역하고 디지털화해 시민에게 공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불교 도시로 꼽히는 부산도 이런 일에 관심 갖길 바랍니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