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욕망, 흙인형 형상화

형체가 분명치 않지만 손바닥만 한 ‘흙 인형’은 원숭이, 까마귀, 사슴, 소, 뱀, 토끼 등 동물의 형상이다.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들은 얼굴도 몸도 심하게 변형되고 왜곡돼 있다.

김성철 작가의 설치작품 ‘우울한 관계’를 구성하는 흙 인형 중 일부분. 미광화랑 제공

부산의 중견작가 김성철(42)이 열 번째 개인전 ‘우울한 관계’를 열고 있다. 설치, 회화,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전시 제목과 같은 설치작품 ‘우울한 관계’다.

지붕이 있는 네모난 성의 벽면에 빼곡히 흙 인형이 놓여있다. 인간과 친숙한 동물과 인간을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만든 도자 작품이다. 작가는 이를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어떤 모습으로든 변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한 이 앞에서 토끼나 사슴이 되고, 약한 이 앞에서는 뱀이나 교활한 원숭이가 되는 우울한 사람 간의 관계를 형상화했다. 흙 인형이 변형되고 왜곡된 모습인 까닭은 인간에서 동물로 변하는 중간 단계를 상상해 표현했기 때문이다. 스케치 없이 단번에, 직감적으로 빚어낸 작품들은 같은 형상이 거의 없다.

‘우울한 관계’가 즉흥적인 작품이라면, 반대로 ‘유배된 사물’은 한 획 한 획 정성 들인 정밀한 작품이다. 실제 존재하는 수천, 수억 원 상당 명품 시계를 끈의 무늬와 분침·초침까지 정밀하게 재현해 마치 고가의 상품인 양 진열했다. ‘시간을 본다’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사람 관계에서 과시의 용도로 전락한 시계의 운명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작가가 모형 시계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 작품과 실제 작업대를 함께 선보인다.

‘번아웃 증후군’에 걸릴 만큼 소진된 현대인의 삶을 위트 있게 표현한 ‘피곤한 사물들’ 작품도 눈길을 끈다. 전시는 다음 달 6일까지 부산 수영구 민락동 미광화랑에서 계속된다. (051)758-2247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