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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잠들기 전 머리맡 이야기에서부터 유리천장 깨기 /박진명

종이 봉지 공주- 로버트 문치 글 /마이클 마첸코 그림 /김태희 옮김 /비룡소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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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8-25 19:39:09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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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출장 간 아내 덕분에(?) ‘독박 육아’를 경험했다. 날마다 엄마와 잠들던 4살 딸 아이는 아빠랑 잠자는 것에 단호히 반발했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주 양육자의 자리를 금방 부양육자인 내게 내어주었다. 특히 다른 것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해도 굳이 잠은 아빠랑 자겠다는 바람에 부녀 관계가 며칠 새 부쩍 살뜰해졌다.

   
‘종이 봉지 공주’가 용과 맞서 싸우는 장면. 비룡소 제공
아이가 잠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는 언제나 책과 이야기였다. 잠들기 전 제3의 감각이 깨어난 아이는 이유 없이 칭얼거리거나 울기도 했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면 예외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만 3년의 인생에 무슨 이야기할 게 그리 많은지 한 시간 동안 재잘거리다 잠들기도 했다. 잠들기 전 바로 그 순간은 시간이 뒤죽박죽 섞이기도 하고, 인칭이나 시점을 넘나들면서 무의식까지 언어를 속삭여 저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의 세계관이나 가치를 형성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아빠라도 매일 들려줄 이야기를 직접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전래동화라든지 명작동화라든지, 이미 숱하게 읽어왔던 이야기꾼들에 이야기를 빚질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칭 페미니스트인 아내가 전래동화와 명작동화 금지령을 내렸다. 성 역할 규정이나 인식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콩쥐와 팥쥐’나 ‘헨젤과 그레텔’의 새엄마처럼 악역은 꼭 여자이며,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같은 공주들은 스스로 일궈내는 것 없이 남의 도움만 받으며, ‘해와 달의 오누이’에서 바보같이 호랑이에게 나무 오르는 법을 알려준 것도 여동생이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특히 물레인 것을 알고도 찔리고 이웃 나라 왕자가 키스해야 깨어나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바보같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공주’는 금서 1순위에 올랐다.

아내의 반응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동화나 유아용 동영상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다 큰 성인을 위한 책이나 영화에서도 여성 주인공이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거나, 성을 상업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태와 연결지어 보니 확실히 문제가 있구나 싶었다. 비슷한 이야기에 반복해서 노출되면 세계관도 그렇게 따라가기 쉽다. 게다가 그것이 아이들의 무의식 세계가 열리는 잠들기 전 읽어주는 동화라면 더 께름칙하다. 어쩌면 유리천장은 잠들기 전 읽는 동화에서 이미 똬리를 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종이 봉지 공주는 딸아이를 씩씩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 귀한 그림동화 책이다. 정혼할 왕자까지 있던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공주의 성에 느닷없이 용이 나타나 성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왕자를 납치한다. 화가 난 공주는 종이봉지를 주워 입고 용의 흔적을 따라 왕자를 구하러 간다. 또 공주는 기지를 발휘해 엄청난 힘을 가진 용의 우쭐함을 자극해 지치게 만든 뒤, 왕자를 구하러 동굴로 들어간다. 기존의 이야기들이 반복했던 성 관념에 의문을 던지는, 주체적인 공주의 모습이다. 종이봉지를 걸친 공주의 꾀죄죄한 모습을 본 왕자가 그녀에게 예쁘게 차려입고 다시 오라고 말하자, 이 주체적인 여성은 다시 한번 일침을 날린다.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

   
지혜롭고 반짝이는 4살의 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벌써 스스로 역할을 한정 짓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잠들기 전 머리맡 이야기부터 이 기울어진 세계를 고민하게 된다. 내 딸의 상상에 날개를 달고, 무의식에 좋은 주름을 새길 수 있는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문화기획자·청년정책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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