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문학상 받은 작가들이
- 조각상·주택·문학작품 원고 등
- 특별한 소재 품은 박물관 여행

- 과거를 만나고 현재를 생각하며
- 미래의 통찰 얻는 '영감'의 원천
- 에세이·기행기로 생생히 묘사

제주도의 '건강과 성 박물관', 강원도 강릉의 '피노키오 미술관', 경기도 남양주의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 등 우리 주변에는 이목을 끄는 독특한 박물관이 많다. 최근에 개관한 부산 영화체험박물관처럼 관람에 그치지 않고 관객이 직접 만지고 느끼며 생각하도록 이끄는 등 변신을 꾀하고 있다.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보이드가 다녀온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의 내부 모습. 예경 제공

끌리는 박물관에도 세계 곳곳의 다양한 박물관이 나온다. 하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박물관은 아니다. 회화, 조각상, 문학 작품 원고, 인형, 주택, 예술가가 살았던 공간 등 소박하지만 일상적인 소재를 품은 곳이 등장한다. 위압감을 느낄 만큼 큰 박물관도 아니고, 작품 수도 많지 않지만 읽다 보면 박물관이 그게 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책의 부제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처럼 박물관은 '과거를 만나고 현재를 깊이 생각하며 미래를 열어갈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곳'임을 깨닫게 된다.

서로 다른 박물관을 선정하고 다녀온 이들은 맨부커상, 마일스 프랭클린상, T.S.엘리엇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다. 책은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인텔리전트 라이프'에 '박물관의 저자'라는 이름으로 실린 원고 가운데 24명의 글을 엄선했다. 번역자가 "셰익스피어의 후예들"이라고 표현할 만큼 세계적인 작가들의 전하는 박물관 기행기이자 박물관을 소재로 한 에세이, 혹은 영감(靈感)기인 셈이다.

책에는 박물관 관련 사진이 없어 작가의 시선과 생각에 따라 박물관을 떠올릴 수 있다. 뉴욕의 '로어 이스트사이드 주택 박물관'을 방문한 로디 도일이 전하는 묘사는 생생하다. "건물의 일생은 벽 속에, 벗어진 페인트 뒤에, 벗어진 페인트 속에 있다. 손으로 벽을 살짝 문질러보고 싶은 유혹, 그 방치와 세월을 벗겨내고 박편들이 일어나 떨어진 것을 지켜보고 싶은 유혹이 일렁인다."(25쪽)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진솔하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한 존 란체스터는 박물관에 관한 자신의 과거 경험이 유쾌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어린 시절 내게 박물관은 사실상 고문 장소였다.(…)부모님은 박물관에 데려가는 것으로 나를 고문했고, 나는 확고하고 고집스럽게 지루해하는 것으로 부모님을 고문했다."(241쪽)

혹은 과거에 몰랐던 것을 깨닫고 더 나은 미래를 예견하기도 한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실연 박물관'을 다녀온 아미나타 포나는 극적이지 않은 전시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한다. "그 앨범은 첫 번째 결혼은 비참했으나 재혼으로 행복을 찾은 여자가 기증한 것이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니 점점 기운이 났다. 이 물건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중간 과정이 아무리 오래 이어지고 고통스럽더라도 사람들은 진정한 자신과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258쪽)

길지 않은 여행기를 하나씩 넘기다 보면 다음에 떠나는 여행에서 반나절은 오로지 여행지의 박물관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