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된 시범가로 사업
- 간판문화 변화 이끌고
- 곡선이 된 도로도 '성공적'
- 다만 길 곳곳 사람·동물 동상들
- 상징성·예술미 못 느껴져

어떤 의미에서 이 글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할 수 있다. 부산 중구 광복로의 '시범가로사업'이 마무리된 때가 2008년 2월이다. 햇수로 세면 올해가 10년이다. 사업기간 3년에 국비·시비·구비를 합쳐 86억6000만 원을 들인 이 사업은 광복로를 지금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부산을 상징하는 나라의 명소인 광복로가 말끔하게 새 단장을 끝내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전국의 관심이 쏠렸고 축하가 쇄도했다.

	광복로의 조형물들. 사진은 개울에서 종이배를 띄우며 노는 아이들.

광복로와 가까운 곳에 사는 터라 아주 자주 광복로에 나가 어슬렁거리는 처지에서 주관적으로 말하자면, 광복로의 지금 모습은 괜찮다. 광복로 시범가로 사업의 핵심은 계통 없이 어지럽게 널려 있던 많은 간판을 일정한 미적 기준에 따라 정돈하고, 일직선이던 도로의 선형을 곡선으로 바꾼 것이었다. 여기에 예술의 힘을 빌려 조형물을 여러 개 놓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눈에 익숙해져버리긴 했지만, 시범가로 사업 이전엔 무척 어지러웠던 간판은 한결 정돈됐다. 세련미 있는 것들도 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고, 많고, 화려해야 간판 구실을 한다고 여기던 '간판 문화'의 변화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일직선이던 광복로 도로 선형을 곡선으로 바꾼 것은 생활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는 도시 디자인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 광복로가 '직선'이던 시절, 차는 빨리 달렸고 행인은 직각과 직선이라는 좀 '각박한' 환경에 노출됐다. 선형을 곡선으로 바꾸자 자동차는 느리거나 부드러워졌고, 곡선이 주는 부드러움과 안정감이 사람을 감싸는 효과를 냈다.

	악수를 청하는 신사.

문제는 조형물(사람이나 동물을 표현한 동상)이다.

2008년 2월 광복로 시범가로 사업이 마무리된 직후였다. 중구 원도심의 문화지킴이 몇 분이 "광복로 조형물이 잘못됐다. 국적 불명이고 왜 저기에 저런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지 상징성도 없다. 게다가 예술미도 느끼기 어렵다"는 취지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를 비판하고 점검하는 토론회라도 열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솔직히 그냥 넘어갔다. '예술이나 아름다움에 관한 판단은 수용자의 취미나 기호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주관적인데' 그걸 어떻게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좀 강했다.

	하마.

그 뒤로 10년이 흘렀다. 그간 집 근처인 광복로를 수없이 다니면서 문득 느꼈다. 광복로의 조형물들이 산책자로, 여행 안내인으로, 행인으로 그 거리를 걷는 내게 살갑게 '말을 걸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누구한테 애써 보여준 적도 없다. 지금의 판단은 10년 전 광복로 지킴이들의 그 비판이 옳았다는 것이다. 광복로의 조형물은 대부분 눈길 잡는 조형미도, 그곳과 어우러지는 상징성도 느끼기 어렵다. 국적 불명이라는 지적? 동의한다.

조형물 가운데 시냇가에서 종이배를 띄우며 노는 세 아이를 표현한 동상은 광복로의 수로 형식 조형물과 함께 있어 그래도 생기가 있다. 하지만 악수를 건네는 동상, 벤치에 앉은 동상, 팔을 벌린 여인 동상 등에서는 좀 냉정히 말하면 '도대체 여기에 왜…'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마를 표현한 동물 조형물도 특징이나 어떤 인상을 느끼기 어렵다. 광복로 한가운데 있는 시티스폿의 조형물은 그래도 유려한 맛이 있지만, '시티스폿'이라 작명이 걸린다. 10년이 지났건만, 그곳을 시티스폿이라고 정확히 인식하는 부산 사람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시티스폿'인지 '시티스팟'인지 헷갈릴 따름이다.

불평이나 취향을 늘어놓자는 게 아니다. 여기가 어딘가? 한·중·일 관광객이 넘치는 부산 명소 광복로 아닌가? 이런 공간의 공공 디자인을 돌아보고, 만약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렇게 하고 그게 당장 힘들다면 개선의 계기로 삼아 더 나은 공공 디자인을 도시에 입히자는 것이다. 일을 벌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세심하게 짚어가고 반성하는 것이 또한 문화행정이 발전하는 길일 것이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