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퀭한 눈과 꾹 다물고 있는 입
- 무표정 가면 등 부조 20여점
- 세월호·테러·국제분쟁에
- 무감각한 사회를 표현해
- 내달 16일까지 조현화랑

'시대의 초상'을 기록하는 안창홍 작가가 부산에서 첫 조각전을 열고 있다.

안창홍 작가의 '눈먼 자들'. 조현화랑 제공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안창홍(64) 작가는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상처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한국 대표 작가다. 대표작인 '49인의 명상'(2004)은 빛바랜 증명사진을 통해 과거 속에 정지된 형상을 현재로 불러들이는 작업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흐름인 '민중미술'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 '베드 카우치' 연작(2008~2010)도 그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안창홍이 이번에는 부산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가면 조각과 부조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조현화랑'(부산 해운대구)에서 열리는 개인전 '눈먼 자들'이다. 그가 회화 작품과 함께 조각을 선보인 적은 있지만, 조각만 선보이는 전시회는 처음이다.

작가에게 가면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자 사회에 대한 저항 방법이었다. 1970·80년대의 '가족사진' 연작 속 텅 빈 눈과 지워진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듯 강렬한 인상이었다. 작가의 아들이 전쟁놀이에 썼던 가면을 보고 작업한 '위험한 놀이'의 등장인물도 하나같이 가면을 쓰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가면' 조각작품은 1년 전 우연히 156㎝ 길이의 거대한 얼굴 가면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세상의 이야기가 한 곳에 모이는' 경매 장터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흰색 얼굴 위에 붉은 입술을 한 대형 여인가면을 만났다. 작가는 특별하지 않은 도시적인 인상의 여인 가면에서 강렬한 작업 동기를 느꼈다.

그는 여인가면을 바탕으로 금형을 제조해 가면을 만들 수 있는 여러 조각을 만들어 냈다. 조각을 자르고 붙이고 잇기를 반복해 다양한 형태의 가면을 완성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12개의 가면은 똑같이 무표정하지만 가면에 입힌 색채는 각각 다르다. 단순하게 검은색으로 칠해진 가면부터 검은색 가면에 금 조각이 붙어 있기도 하고, 화려한 색채로 완성하기도 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얼굴에는 눈동자가 없고 다문 입에서는 분노와 슬픔 등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2m에 이르는 두상 조각 '눈먼 자들'도 기괴하고 섬뜩하다. 눈은 퀭하고 입은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가면' 작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는 거친 세상 속에서 상처나고 곪아 이제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 현대사회의 우리처럼 보인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서 일어난 테러와 국제분쟁 등 가슴 아픈 일이 침묵과 망각으로 덮여지는 것을 본 작가가 분노와 울분을 작업으로 고스란히 표현했다.

최태만 미술평론가는 "안창홍의 거대한 가면은 특정 개인의 초상이 아니다"며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문명에 억압받는 개인은 예상치 않은 상황에 직면해 모두 '눈먼 자들'로 전락한다. 뜬 눈으로 세월호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아야 했던 우리는 어느새 눈먼 자들이 돼버렸다"고 해석했다.

전시는 다음 달 16일까지 열린다. 월요일 휴관, 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051)747-8853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