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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뿌리 내린 식물은 시들 때까지 자랄 뿐 헤매지 않는다 /정광모

랩 걸(Lab Girl)-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알마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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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6-02 19:08:18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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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여성 과학자가 쓴 식물 대중서
- 차별에 맞서 생존하기 위한 분투
- 식물이 자라는 과정에 빗대 풀어내
- "나무 한 그루 심어 속삭임 들어보자"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을 수놓은 보리 새싹. 국제신문DB
지구에는 기적이 넘쳐난다. 암흑의 우주를 떠도는 지구에서 내리는 비는 기적이다. 식물의 잎도 기적이다. 이산화탄소와 햇빛과 물로 당을 만들어낸다. 스스로 영양소를 만들지 못하는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저 푸른 잎이 만드는 영양분에 삶을 빚지고 있다. 살아 있지 않은 무기물에서 당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우주에서 식물이 유일하다. 그러니 잎을 품은 씨앗은 기적이다.

씨앗은 싹을 틔우기 위해 1년에서 2000년까지 기다린다. 적절한 온도와 수분과 빛과 같은 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씨앗은 싹을 내고 첫 뿌리를 내린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첫 뿌리의 첫 임무는 닻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단 첫 뿌리를 뻗고 나면 서리와 가뭄과 굶주린 벌레가 찾아와도 도망갈 가망 없이 마주쳐야 한다. 뿌리는 인생에서 딱 한 번 그 순간의 빛과 습도를 감지하고 자기 속에 내재된 프로그램으로 정보를 점검한 다음 몸을 던져 뛰어든다. 첫 뿌리는 운명과 존재 모두를 건 승부다.

씨앗은 싹이 자라기 전 뿌리를 먼저 내리므로 엽록소에서 양분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며칠 또는 몇 주를 굶어야 한다. 뿌리를 내리면 씨 안에 들어 있던 마지막 양분을 모두 소진한다. 실패하면 죽음이다. 씨앗으로선 모든 것을 건 도박이다. 그러니 금정산과 황령산을 오르며 만나는 나무와 풀에 경의를 표하자. 그들 하나하나는 4억 년에 걸친 치열한 생존 투쟁과 현재의 담대한 도전 끝에 성공한 기적의 산물이다.

미국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여성 식물학자 호프 자런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풀면서 자신이 걸은 힘든 과학자 삶도 함께 얹는다. 미국에서도 여성 과학자는 차별받는다. 식물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잎을 하늘로 뻗어 올리는 것처럼 지은이도 여성 과학자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 둘의 모습이 닮은 것 같아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우리는 식물을 식량과 의약품과 목재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잣대는 인간에게 유용한가 여부다. 그래서 지구의 녹지는 벼와 밀, 옥수수로 덮인다. 그러나 식물은 그 이상의 무엇이다. 1977년 워싱턴 주에 있는 시트카 버드나무 숲이 텐트나방 애벌레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됐다. 놀랍게도 그 버드나무 숲에서 1~2㎞ 떨어진 곳에서 자라는 건강한 버드나무 잎을 나방 애벌레에게 먹이자 시들시들 병이 들고 말았다. 처음 공격을 받은 버드나무가 애벌레 죽이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공중에 뿌린 것이다. 그 화학신호가 1~2㎞를 날아 다른 버드나무에 경고신호를 보냈고 멀쩡한 버드나무도 미리 독을 만들어 이파리에 주입해놓은 것이다. 나무는 서로 돌보는 신호체계를 가동하고 있었다. 그러니 식물이 아침과 저녁 서로 안부를 묻는지도 알 수 없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쓸쓸한 거리를 걸어 따뜻한 집으로 들어간다. 사람에게 영하의 날씨 속에 꼼짝 않고 3개월을 서 있으라 하면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식물은 이 기적을 이루어 낸다. 겨울에 나무는 먼저 얼어 죽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나무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물을 몸에 채우고 있고 물은 0도에서 얼면서 팽창한다. 나무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 나무는 세포 안에 당과 단백질을 농축시키고 고도로 정제한 순수한 물을 채운다. 순수한 물은 영하 40도로 냉각해도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울 눈 덮인 나목은 숭고하게 보이는지 모른다.

   
4억 년 전 식물이 헐벗은 육상에 나타난 이래 인간은 이 위대한 걸작을 파괴하는 유일한 종이다. 인간은 10년마다 500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는데 프랑스만 한 면적이라 한다. 저자는 그 면적을 다시 복구하지 못한다고 개탄한다. 저자는 먼저 마당에 한 그루 나무를 심자고 제안한다. 동의한다. 그리고 꽃과 풀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우리에게 전하는 신비에 귀를 기울여보자. 4억 년에 걸쳐 전해 온 귀중한 속삭임이다.

소설가·'작가의 드론 독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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