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번역한 단어 '민주' '공화'
- 그 틀에서 사는 한국이 더 잘 누려
- 헌법정신 실천은 국민행복과 직결
- 5월 대선은 살아있는 헌법의 사례

헌법 덕분인가, 촛불의 힘인가. 5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끌어낸 뜻하지 않은 선거다. 장미뿐 아니라 아카시아 꽃과 라일락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계절이다. 삭풍에 몸 떨리는 12월 대선보다 투표장 가는 발걸음이 따뜻할 것 같다.

지난달 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실천의 필요성과 정당함은 우리 헌법 정신에 잘 담겨 있다. 국제신문 DB

대통령 탄핵을 보면서 헌법에 규정한 절차가 그대로 지켜지는 데 놀랐다. 추상적이고 우리 삶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헌법이 죽은 법이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 꿈틀거렸다. 검찰은 들끓는 여론에도 불소추 특권을 지닌 대통령을 조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자 헌법 조항에 따라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야 했고, 민간인 신분으로 검찰 앞에 서야 했다. 정치권력보다 헌법이 우위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이 힘을 떨치는 순간이었다. '지금 다시, 헌법'은 탄핵을 둘러싼 격변에 다시 헌법을 찬찬히 살펴보고, 그 의미와 미래를 진단한다.

헌법은 일본에서 서양의 Constitution을 번역한 용어다. 동양에서 '헌법'은 1889년 일본의 대일본제국헌법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민주'와 '공화'도 일본이 서양 말을 번역해 만들었다. 헌법 정신의 기틀인 '자유'와 '권리'도 일본이 만든 단어다. 우리는 일본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으나 기가 막히게도 일본이 제공한 개념 틀 안에서 사는 셈이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와 '공화'를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더 잘 누릴 수도 있으니 기죽을 일만은 아니다.

헌법을 가지지 않은 나라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헌법을 가졌는가, 그 헌법이 실제로 국민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하는가는 다른 차원이다. 1948년 시행된 제헌 헌법은 84조에서 '사회정의의 실현'을 대한민국 경제 질서의 기본으로 삼았다. 또 18조에 근로자는 사기업의 이익 분배를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 법 조항과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대전 대표 빵집 성심당은 회계 납세 명세서를 직원에게 공개하고 매년 이윤의 15%를 직원에게 성과보수로 지급한다. 한국 사회에 낯선 기업문화이나 제헌 헌법의 정신으로 따지면 당연하다. 이런 기업문화가 널리 퍼지면 우리의 빈부 격차가 완화되고 분배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까? 아침이면 출근하고픈 살맛 나는 직장이 늘지 않을까?

헌법은 근대국가가 성립하면서 국가의 상징이 되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법이면서 정치 결정에 따른 법이다. 그래서 현대의 정치 사회개혁은 시대 요구를 담은 헌법 개정을 통해 표출된다.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과 경제 조항은 추상적인 언어라 바로 현실에 적용되는 힘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시민이 헌법을 익히고 사회가 그 헌법 정신을 현실에 쓰는 사례가 늘수록 헌법은 저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시민에게 곁을 내줄 것이다. 헌법 개정 자체도 뛰어난 성과겠지만, 개정 과정에서 모인 시민의 힘과 각성이 그 헌법을 현실에서 움직이는 기준으로 만들 것이다.

광장의 촛불과 국회가 헌법에 규정된 탄핵 절차를 지켜 얻어낸 5월 대선은 살아 있는 헌법을 보여주는 벅찬 사례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는 부족한 점이 많고 흔히 '87년 체제'로 불리는 시대적 한계도 있다. 한국 사회는 급변하고 경제 구조도 바꿔야 하며 평화 통일을 향한 어려운 길을 열어젖혀야 한다. 헌법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여의주가 되지는 않겠지만 주춧돌 역할은 충분할 것이다. 이 책은 헌법에서 부족한 점을 짚고 고쳐야 할 점을 제시하며 새로운 미래를 키울 요람으로 자리할 헌법을 해설한다. 우리에게 헌법은 끊임없이 완성해 나가야 할 민주주의의 표상이다.

소설가·'작가의 드론 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