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건'(2017·사진)은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에서 시작한다. 2029년의 가까운 미래. 자유와 평등을 위해 투쟁하던 돌연변이들은 거의 멸종했고, 남아있는 건 재생 능력을 잃고 급속한 노화를 겪는 울버린 로건과 동료 칼리반, 치매에 걸려 보살핌이 필요한 찰스 자비에 교수뿐이다.
로건은 부랑아처럼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 사막 버려진 물탱크와 시설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두 사람의 약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리무진 기사로 일하며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로건은 실험실에서 도망친 어린 돌연변이 로라를 만나고, 비교적 안전한 캐나다 국경으로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지난한 여정에 오른다.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 사회적 인정 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해 정치적 은유로 풀어낸 '엑스맨' 시리즈는 '로건'에서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돌연변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공공의 선에 기여하며 정상적인 사회 질서의 일부로 편입되거나, 아니면 투쟁함으로써 체제를 바꾸는 길을 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떠나기를 강요받는 국외자의 운명에 처한다.
로라를 보호하려는 로건의 탈주는 국경에서 출발해 또 다른 국경에서 끝나며, 단란한 흑인 가정의 농장에서 맞은 평화와 휴식은 탈주자를 포획하려는 추격대에 의해 산산이 조각난다.
영화는 인종적 다양성과 소수자의 문제를 더는 관용과 포용이 아닌, 배제와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트럼프 집권 이후의 미국에 대한 묵시록적 전망처럼 비친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영화의 심층에는 고전 서부극의 가족 드라마적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 속 로건의 캐릭터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현상금 벌이에 나서면서도 과거의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용서받지 못한 자'(1992)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자신이 신세를 진 마을의 꼬마 조이를 친아들처럼 아끼고 총 쏘는 법을 가르치던 '셰인'(1953)의 주인공 앨런 래드가 투영되어 있다. 가족의 어르신과 다름없는 찰스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며, 로라에게 텅 비어있던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무뚝뚝한 가장 로건. 로건은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지키고자 온몸을 내던져 과거의 망령과 맞선 끝에 숨을 거둔다. 임종을 지키며 로라는 로건을 '아빠'라 부르고, 무덤가에서 '셰인'의 대사를 읊는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가족을 지키고, 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령과 가치를 가르치며, 종국에는 업보를 짊어지고 죽어가는 육신과 함께 묵묵히 퇴장하는 서부 사나이의 모습. 그렇게 피를 뒤집어쓴 아버지는 꺼져가는 목숨과 함께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고, 아이에게 더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 쫓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물려주고자 한다.
상처투성이에 지칠 대로 지쳤음에도 혈육도 아닌 아이를 지키고자 분투하는 로건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휴 잭맨 필생의 열연을 통해 영화가 펼쳐내는 감정적 스펙터클이며, 단순한 부성애를 넘어 기성세대가 보여야 할 어른의 귀감일 것이다.
젊은이에게 주어진 현실의 벽이 턱없이 높아진 시대이다. 묵묵히 책임지고 미래 세대에 본을 보이는 어른의 모습이 귀한 지금 '로건'은 어른의 윤리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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