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년 간 이란서 살며 여행한 저자
- 시인의 감성으로 역사현장 관찰
- 기자의 시선으로 문화사 기록

문득 국내 출간 서적 가운데 이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서점 사이트를 뒤져 보니, 역시 아프리카나 남미 대륙보다 관련 서적이 적다. 중동 국가 가운데서도 유독 폐쇄적일 것 같은 막연한 선입견은 이란에 대한 마음의 거리를 더욱 벌려놓는다. 이란-페르시아, 바람의 길을 걷다는 그래서 더 반가운 책이다. 저자는 여행자의 눈으로, 거대한 문명을 따라 담담하고 정직하게 기록한다. 한 단원도 놓치기 아까울 만큼 흥미로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서구 중심의 눈으로만 보았던 이란의 원형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이란 중앙부의 아름다운 도시 이스파한에 있는 '블루 모스크'. 이슬람교의 낙원을 구현한 곳으로 푸른 빛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문학세계사 제공

이란은 우리에게 친숙한 페르시아 신화의 고향이다. 페르시아는 그리스가 붙여 준 이름이고, 이란은 이란 사람들이 제 스스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란은 국토 절반 이상이 사막인 나라지만, 온 국민을 너끈히 먹이는 곡창지대가 있고 만년 설산과 바다 같은 호수가 있는, 있을 것 다 있는 하나의 대륙이다. 그리고 이란은 세계 유일의 이슬람 신정국가다. 이란의 주권은 국민이 아닌 신에게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함께 태어난 인류 문명의 한 발상지이지만, 1979년 친미 왕조 타파 혁명 이후 미국과 40년을 척지며 세상과 자의반타의반 담을 쌓고 살아온 이란에 관한 정보는 한국인에겐 대부분 새롭다.

여행기를 표방하지만, 감상에만 그치지 않고 정보와 통찰이 돋보인다. 저자의 단단한 내공 덕분이다. 저자 김중식 씨는 시인이며,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국정홍보처에서 '어공'(어쩌다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는 3년 6개월(2012년 3월~2015년 8월) 동안 주 이란 한국대사관에서 문화홍보관으로 일하며 이란을 익혔다. 시인의 감성에 기자의 간결함이 더해진 문장은 읽는 재미가 크다. 저자는 '최후의 여행지'로 여겨지는 이란은 문화 충격의 연속일 수 있지만, 낯섦과 불편을 기꺼이 감내하는 여행자에게는 매혹적인 여행지가 될 것이라 말한다.

테헤란 근교로 소풍을 나온 이란 여학생들.

인류사의 첫 대제국 페르시아의 고향으로 동서양 문화가 처음 만났고, 동방이 서양의 문명과 문화의 젖줄이었다는 사실이 꾸준히 드러나는 오늘은 '세계사의 중원'을 다시 만나기 적절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란 역사의 주요 왕조들이 수도로 삼았던 도시를 연대기 순으로 따라간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이란에서는 보이는 것만 보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제국의 궁은 사막 속 돌산이고, 오아시스는 빨래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 과거를 '입체 복원'하기에, '이란-페르시아, 바람의 길을 걷다'는 매력이 선명하다.

저자는 귀국을 앞두고 이란 버전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찾아내 우리나라에 번역·소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이 저자가 이란에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우라고 생각했다고. 그러나 그런 책을 찾지 못했고, 결국 직접 썼다. 정보를 가득 담기보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거대한 문명을 이해하고자 고투한 흔적이 드러나는 '나의 페르시아 문화 답사기'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