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심리·관계적 자리 잡지 못한
- 중요한 것 없는 소설 속 인간군상
- '포기'로 상징되는 요즘 청년들 같아
- 내용 재밌지만 읽고 나면 먹먹함 들어

-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 걸음인 세상
- 주인공들과 실컷 수다라도 떨면 어떨지

2010년 'G20 정상회의'가 개최될 때, 평범하게 살아가는 청년 주부 대학생의 삶과 너무 동떨어져 공감이 가지 않았던 그 '정상들의 회담'이 얄미워 우리끼리 각자 고민과 비전을 공유하는 '비정상 회의'를 개최했다.

	청년들이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청년정책을 요청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소설집 '손잡고 허밍'은 이 시대 청년의 자화상을 쓸쓸하면서도 유쾌한 입담으로 제시한다. 국제신문 DB

그때는 결정권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내리는 결정과 정책이 내 삶을 딱히 이롭게 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이 사회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국어교습소, 과일 장사, 문화공간 운영, 잡지, 문화예술교육, 마을 만들기 등 10년간 여러 일을 통과하고 있고, 대부분 2~3가지 일을 동시에 해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설렘보다 막막함이 컸고, 성과는 윗돌을 괼 아랫돌조차 되지 못하고 금방 휘발되었다. 청년이라는 보잘것없는 수식어를 달고 지역에서 버티기 위해 온갖 애를 쓰면서 최근에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한 분야에 집중하면 착취당하기 딱 좋다'.

지역을 떠나지 않고 버틴 죄로 착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거나, 프리랜서의 가면을 쓰고 닥치는 대로 일하거나,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가가 되거나. 자기 월급 통장 하나 마련하기도 벅찬데 사회운동까지 청년의 몫으로 넘어오는 상황이다. 뭐라도 해보겠다고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창업이다 취업이다, 정책 제안이다 이런저런 자리를 찾아다니는 청년의 뒤통수에 비수가 날아든다. "요즘 청년은 영악한데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이 없어!"

제목이 말랑말랑 연애소설 같은 손잡고 허밍은 9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책이다. 그 안의 인간군상은 모두 변두리에 밀려난 사람이자 하나같이 뭔가 중요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럴 듯한 주거지가, 쾌변이, 아버지가, 가족이, 이름이, 시간이, 섹스가, 숙면이, 직장이, 친구가, 여가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가지지 못한 소설 속 인물은 포기로 상징되는 요즘 청년상이기도 하다. 경제적, 심리적, 관계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청년은 이 책 속의 주된 인물이기도 하다.

어딘가 나사 풀린 듯한 인물과 약간은 판타지적이기도 한 상황은 '꽁트스럽기도' 하면서 재밌게 읽힌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의 무게가 여운으로 남는다. 소설을 읽다 보면 20·30대를 통과하면서 10번 넘게 주거지를 옮겨 다녔고, 쓸모를 찾기 힘들던 문학을 전공했고, 행동 하나하나에 두께를 재던 지갑과 참치 김밥을 먹는 멍멍이를 오래 훔쳐보던 나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자화상은 편의점이며, 과외며, 아르바이트며 오래 자기 자리를 찾다가 깊은 내상을 입어 지금은 영 안 보게 된 친구들 모습이다.

한동안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자괴감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실패는 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놀기 좋아하는 체질도 바꿔가면서 열심히 사는데, 세상이 더 빨리 움직이니까 자꾸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이다. 소설 속 인물처럼 축지법이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저 사는 데 필요한 역할과 일마저도 지속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걱정된다.

자존감을 잃고 제각각의 동굴 속에서 고립되기 전에 다시 한번 각자의 '비정상'을 화두로 실컷 수다라도 떨면 좋겠다. 이 소설집은 그런 비정상들의 아직은 부끄러운 수다이자, 서로에게 어색하게 손을 내미는 비정상 회의다.

고시텔에서 자살한 청년의 기사에 친구 이름을 태그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대, 그 다급한 호명이 실제로 들은 것처럼 섬뜩하게 뚜렷하다. 허밍까지는 모르겠는데 이 손들은 잡고 봐야하지 않을까.

문화기획자·청년정책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