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상과학' 아닌 '과학'으로서 SF 장르의 매력

'매우 드문 책'이란 점이 첫째 매력이다. 저자 고장원은 과학칼럼니스트이자 SF(과학소설) 작가이며 SF 평론가이다. 한국 문학계에 SF 작가는 적고, SF 평론가는 지극히 드물다. 과학칼럼니스트도 많지 않다. SF의 힘은 저자 고장원이 그간 열심히 쓴 과학 칼럼과 SF 평론과 에세이를 500쪽 분량으로 펴낸 책이다.

우주 엘리베이터 상상도. 탄소 나노튜브 소재 케이블로 통로를 만들어 지구에서 우주까지 연결하는 설비로 이에 관한 연구가 현재 활발하다. 추수밭 제공

과학의 세계를 깊이 있게 또는 재미있게 풀어쓴 책은 다양하게 나와 있고 꾸준히 출간된다. 제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면서 독자의 관심도 커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 SF의 상상력, 역사, 현재의 좌표까지 절묘하고 실감 나게 연결한 책은? 드물다.

두 번째 매력 요인은 놀라운 현실감을 꼽겠다. 이 책은 SF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사랑을 바탕으로 우주, 유전공학, 인공지능, 세계화, 종말, 가상현실, 의학 등 과학 영역을 다룬다. SF나 과학을 저 멀리 있는 남 얘기처럼 여기는 독자도 꽤 있을 텐데, 이 책은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 같은 현실감을 뿜는다.

우주 엘리베이터는 "적도 지역과 고도 3만6000㎞ 상공의 대기권 외곽을 탄소 나노튜브 소재의 케이블로 연결한 운송수단"(89쪽)을 일컫는다. 이걸 만들면 짐(또는 사람)을 싣고 우주까지 그냥 올라간다. 정점까지 가서 우주비행체를 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1960~1970년대 아폴로 우주선은 시속 9921㎞(마하 8)로 고도 68㎞에 다다르자면 제1단 로켓에 가득 찬 2000t의 연료가 불과 2분 반 만에 바닥나버렸다."(92쪽) 우주 엘리베이터를 실용화하면 연료를 이렇게 엄청나게 쓰지 않아도 된다. 우주 개발 비용은 뚝 떨어지고, 사람이 우주로 나갈 때 겪는 고통도 크게 줄인다.

이게 상상의 세계가 아니란다. 실용화까지 가려면 먼 길이 남았지만 미국의 하이리프트시스템이나 리프트포트그룹, 일본 오바야시구미, 독일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 같은 기업이 이미 뛰어들었다. 우주 엘리베이터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건 1895년이고, 1975년 제롬 피어슨의 논문이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영미권 SF 거장 아서 C. 클라크가 1979년 소설 '낙원의 샘'에서 멋지게 소개했다.

일본 '세카이계' SF 작품인 신세기에반게리온 시리즈'The End of Evangelion' 한 장면.

저자는 우주 쓰레기의 심각성, 웜홀, 황사, 3D 가상현실과 사이버섹스까지 SF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력은 또 있는데, 일본 SF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예로 들면서 권력관계나 부조리 등 구조적 문제는 따지지 않고 감상적 흐름을 고집하는 일본의 '세카이계' SF를 비평하는 식이다.

한국 사회에는 원전, 메르스, 황사, 지진 등 대재앙이 점점 현실적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SF 장르는 더 활발해질 것으로 저자는 본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