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내한 기자회견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투명 슈트를 입는다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처음 한국을 방문한 스칼렛 요한슨이 "청와대에 가서 모든 것을 알아낸 후 여러분에게 탄핵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드리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자들은 할리우드 스타가 민감한 타국의 정치 상황을 언급한 것이 낯설었던 것이다.

지난 17일 서울에서 열린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기자회견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칼렛 요한슨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반트럼프 배우로 지난 1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반트럼프 시위 '여성들의 행진'에 참가했으며, 미국 유명 코미디쇼 'SNL'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를 풍자했다.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밝히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그녀를 더욱 존재감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날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며 지난 10일 한채아 인터뷰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10일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가 있었던 날이다. 공교롭게도 한채아와의 인터뷰는 장소는 헌법재판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시간도 탄핵 선고가 시작된 오전 11시부터였다. 자연스럽게 탄핵과 관련된 질문이 나왔는데, 한채아는 "그런 어려운 질문을 왜"라며 얼버무렸다. 한채아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정치적인 질문에 회피하거나 무응답으로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혹시 자신의 발언이 배우 생활에,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에 피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 송강호가 '변호인' 출연 이후 섭외가 한동안 끊겼다는 이야기가 돌았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 배우들의 이런 모습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배우뿐만이 아니다. 한국 영화계도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23일 개봉한 '보통사람'이다. 이 영화는 1987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원래는 1975년 박정희 시대가 배경이었고 이전 제목은 '공작'이었다. 1975년에는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에 이어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됐다. 중앙정보부의 위세도 막강했다. 그러니 아버지 시대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공작'이 박근혜의 정부에서 제대로 투자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시기와 제목을 바꿨으나 모태펀드의 투자를 받지 못했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뿐 아니다. 원전 폭발을 소재로 한 '판도라'의 박정우 감독도 "투자를 받기 위해 자기검열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말했고, 여러 제작자나 감독이 "은연중에 자기검열의 잣대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정부 정책이나 성향에 반대되는 영화를 제작하면 피해를 받는다는 생각이 시나브로 생긴 것이다.

창작에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조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는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 사전심의 제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지금은 영화 사전심의 제도보다 더 무서운 자기검열의 굴레에 갇힌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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