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르칸트'와 '우츠쿠둑'

- 양고기 꼬치·수프와 보드카
- 시베리아의 미식 제대로 즐겨
- 가마솥서 쪄낸 양갈비찜에
- 우즈벡식 칼국수·볶음밥까지

# 화교 4세의 집 '포향호채'

- 고소함의 끝 보여주는 멘바오샤
- 육즙 가득 머금은 만두도 일품

# 필리핀 전문점 '마부하이'

- 큼직한 고기·채소 끓여낸 스튜
- 결혼식 등서 즐기는 대표 요리
- 불고기 덮밥 닮은 볶음밥도 별미

부산 동구 초량 외국인 거리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무거운 더께로 앉아있는 곳이다. 한때 청나라 조차지였던 '청관'이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속칭 '텍사스'라는 미군 출입 유흥가와 집창촌이, 러시아와 수교 후에는 러시아인 보부상들이 드나드는 거리로 변천해 왔다. 지금은 러시아인, 중국인, 동남아인이 즐겨 찾는 외국인 관광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다양한 외국 음식 전문점이 성업 중인데,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 관광객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있다. 중화요리 전문점을 비롯하여 러시아 요리, 우즈베키스탄(우즈벡) 요리, 필리핀 요리 등을 선보이는 식당이 밀집해 있다. 이들 중 입소문이 난 몇 곳을 '맛 산책'하듯 소개하고자 한다.


■러시아와 우즈벡의 맛

러시아·우즈벡의 맛- 꼬치요리 '샤슬릭'과 우즈벡의 전통 빵 '삼사'.

상해거리 사거리에 있는 '사마르칸트(SAMARKAND)'는 러시아 음식과 우즈벡 음식을 내는 식당이다.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의 고도(古都). 실내에 들어서면 화려한 색감의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민속 벽화가 이국적 정서를 자아낸다.

러시아 맥주 '사리밀릭'으로 입가심하고 있으려니, 양고기 수프(바라니나 수프)가 먼저 나온다. 양갈비와 감자, 홍당무, 누트 콩 등을 넣고 푹 끓여낸 수프다. 우리나라의 진한 곰국 맛이 난다. 푹 익힌 양갈비가 진한 풍미를 자아낸다.

곧이어 우즈베키스탄 전통 양고기 빵인 '삼사'가 나온다. 겉은 딱딱하고 안은 부드러우면서, 양념이 잘된 양고기 소가 잘 어울린다. 삼사 위에 토마토, 피망 등 채소가 듬뿍 들어간 러시아 소스를 얹어 먹으니, 고소하고 담백하고 상쾌한 맛이 어우러져 좋다. 30분 남짓 지나니 샤슬릭이 나온다. 샤슬릭은 러시아에서 널리 먹는 꼬치 요리로, 이곳에서는 5가지 꼬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양고기, 닭고기, 소고기, 간, 양갈비를 숯불에 구워낸다. 그중 '꾸리싸(닭고기)'와 '바라니나(양고기)'를 맛본다. '꾸리싸'는 우리 장작구이 통닭처럼 구수하면서도 담박한 식감이, 바라니나는 쫄깃하면서 웅숭한 식감이 흐뭇하다.

'샤슬릭'에 곁들여 러시아 보드카 '삐아띠 오젝'을 한 잔 마신다. 차디찬 지하수 느낌의 첫맛에, 불길이 치솟는 뜨거운 뒷맛이 꽤나 강렬하다. 이 샤슬릭과 보드카는 비록 거칠고 부박한 맛의 조합이지만, 광활한 시베리아 야성의 맛이 광대하게 펼쳐지는 게 특징이다.


■라그만과 까잔카밥의 매력

양갈비찜 '까잔카밥'.

상해거리 중간쯤에 있는 '우츠쿠둑'은 우즈베키스탄 음식 전문점이다. '우츠쿠둑은' 우즈베키스탄 중부에 있는 도시. '따냐'라는 이름을 가진 고려인 2세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우츠쿠둑의 대표 요리 '까잔카밥'을 맛본다. '까잔카밥'은 가마솥에서 쪄낸 양갈비와 삶은 감자, 얇게 썬 양파를 곁들여 먹는 양갈비찜 요리다. 양갈비 한 점 크게 잘라 입에 넣는데,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소갈비찜 저리 가라다. 붉은 파프리카 소스를 듬뿍 올려 먹으니 상큼함과 신선함이 양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볶음 칼국수.

매운 수프에 양고기, 각종 채소를 넣어 만든 수제칼국수 '라그만'은 얼큰한 소고깃국 베이스의 칼국수를 연상케 한다. 어떤 이는 양고기의 짙은 맛 때문인지, 해장국 맛이 난다고 한다. 국물이 맵고 진한 것이 일품이다. 커브르마 라그만(볶음 칼국수)도 칼칼하니 괜찮다. '우즈베스키 블로프'는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인 볶음밥이다. 쇠고기와 양고기 등 육류에 당근, 양파, 즈라(커민)씨앗, 향신료 등을 밥과 함께 볶아 만든다. 밥알이 하나하나 살아 제각각 독립된 맛을 품었는데, 강한 향신료가 특색 있는 맛을 낸다. '발티카 맥주'와 함께하니 안주로도 훌륭하다. 음식을 먹고 난 뒤 '차이(녹차, 홍차)'를 마신다. 녹차에 레몬을 넣어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한 잔 머금으니 입안의 기름기를 없애고 속을 다스린다.


■멘바오샤의 고소함에 중독되다

중국의 맛- 빵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새우살을 넣고 튀긴 '멘바오샤'

'포향호채(包香好菜)'는 중화요리를 파는 식당. 미모의 화교 4세, 왕지유 씨가 운영한다. '샤오롱바오(소룡포)'와 '멘바오샤'가 대표 음식이다. '샤오롱바오'는 대바구니에 익혀 먹는 중국 만두로, 촉촉한 육즙을 넉넉하게 품었다. 얇은 피 속 고깃국물이 꿀렁꿀렁하는 샤오롱바오를 입에 넣으면, 뜨겁고 구수한 육즙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물결을 이룬다.

'멘바오샤'는 부드러운 빵 사이에 새우 살을 푸짐하게 넣고 샌드위치처럼 튀긴 요리다. 겉은 바삭바삭하면서 안은 순살 새우 소가 부드럽게 씹히니, 그 고소함이 어디에도 비할 바 없을 지경이다. 연이어 몇 점 정신없이 먹게 되는 극강의 요리로, 먹다가 기름지다 싶을 때 초간장 소스에 양파 한 점 찍어 먹으면, 그 신선한 고소함이 입안을 다시 싱그럽게 가셔준다.

얇은 피 속에 육즙을 가득 품은 중국식 만두 '샤오롱바오'.

상해문 입구에 있는 필리핀 요리 전문점 '마부하이(MABUHAI)'는 다양한 '실록(Silog 달걀프라이 볶음밥)'과 필리핀 전통 음식을 낸다. 필리핀 맥주 '산미구엘'과 '레드호스'도 곁들일 수 있다. 필리핀 볶음밥을 '시낭각(Sinangag)'이라 하는데, 볶음밥용 쌀인 '인디카'로 밥을 지어 마늘과 함께 볶는다. 간이 삼삼하기에 간장과 식초를 뿌리고 달걀 프라이(itlog)를 밥에 올려 먹는다. 이를 줄여 '실록'이라 한다. '실록'은 여러 음식을 곁들여 세트로 먹는데, 곁들여지는 음식에 따라 음식 이름이 달라진다. 주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등을 굽거나 튀긴 음식을 곁들인다.


■필리핀식 풍미, 아시나요

필리핀의 맛- 고기·채소에 향신료를 넣고 끓여낸 전통요리 '칼데레타'

'탑실록(Tapsilog)'과 '칼데레타(Kaldereta)'를 주문한다. '탑실록(Tapsilog)'은 '시낭각'에 소고기를 살짝 건조해 만든 '타파(tapa)'와 달걀 프라이가 추가된 구성이다. 버터의 고소함과 마늘 향이 그윽한 밥 위에 불고기처럼 볶은 소고기를 올렸다. 달걀 노른자를 터뜨려 비벼 먹으니 짭조름하고 고소하여 불고기덮밥처럼 낯설지 않다.

불고기처럼 볶아낸 소고기를 얹은 볶음밥 '탑실록'.

'칼데레타(Kaldereta)'는 필리핀 전통 음식으로 필리핀에서 결혼식이나 생일 등 특별한 행사 때 많이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을 각종 채소, 토마토 페이스트 등을 넣고 끓인 '비프커리스튜' 형식의 걸쭉한 국물요리다. 향긋한 향신료에 고기의 진한 맛과 상쾌한 채소 맛이 잘 어울린다. 큼직한 고깃덩어리가 넉넉하게 들어가 있어 안주로도 괜찮겠다. 대체로 간이 세기에 부산 사람 입맛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우리 부산은 지역 특성상 이질적인 타 문화에 관대하고 포용적이다. 부산이란 타향에서 부산 사람이 되고, 이 부산 사람이 새로운 부산식 문화를 일구어 나간다.

부산의 식문화도 마찬가지다. 타지 음식문화가 다양한 경로로 부산에 유입되고, 부산식으로 식습관화되어 '부산 음식'이 되는 곳이 부산이다. 문화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수용하고 교류하는 것. 외국인 거리의 이국 음식들 또한 '부산식 글로벌 푸드'로서 부산의 식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 볼 일이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