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영강 공공예술 프로젝트'
- 사후·변형된 작품 설치로 논란
- 부산비엔날레 명기 안한게 문제

'수영강변 일원 문화예술 환경 조성사업'에 따라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와 부산 수영구가 수영강변에 지난해 12월 설치한 프랑스 조형예술가 니콜라스 쉐퍼(1912~1992)의 작품 'Lux 10-Busan'을 둘러싼 예술적 가치 논쟁은 결국 공공 미술의 본령에 관한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쉐퍼 작품' 논쟁은 공공 예술의 자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진은 부산 수영구의 공공 미술 작품.(구헌주 그림) 국제신문 DB

우리가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춤 사진 등을 뭉뚱그려 '예술'이라 하는 것은 이 많은 각각의 장르가 예술로서 공통된 속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생각을 거듭 해보았다. 어디까지나 예를 드는 것이다.

많은 걸작 소설을 쓴 작가 이문열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타계한다고 가정하자. 누군가 이문열 작가의 유족에게 비용을 치르고 허락을 얻어 생전에 이문열이 쓴 작품을 개정한 뒤, 이를 '이문열의 작품'이라며 출판한다면 ①이 소설은 이문열의 작품인가? ②이 작품은 이문열이 생전에 쓴 원작과 같은 가치를 지니는가? 나는 이것이 상식의 시점에서 시민의 심정으로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본다.

'Lux 10-Busan'은 원작자 쉐퍼가 이미 타계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족에게서 저작권을 적법하게 받아, 쉐퍼가 남긴 설계도대로, 유족이 지정한 프랑스 건축가의 감리 아래, 국내 업체가, 약 2m짜리 원본을 약 14m로 확대(변형)한 뒤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부산비엔날레 측은 이 작품이 '쉐퍼의 사후 작품이며, 원본을 변형한 것'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또는 분명하게 알리거나 명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Lux 10-Busan'은 현재의 논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거의 '쉐퍼 작품'으로 홍보되고, 보도되고, 인식됐다.

앞서 예시로 든 이문열 작가에게로 돌아가보자. 현대 예술에는 패러디, 복제, 모방 같은 기법이 자리 잡은 만큼 '이문열 예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몇몇 예술인에게서 들었다. 이 지적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애초 출발 단계부터 '원작자 사후에 다른 사람이 변형한다'는 점이 적극적으로 공표됐느냐 않느냐는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것이 예술적 가치를 가르는 관건이 된다.

감천문화마을 어린 왕자 조형물(나인주 작품).

'월스트리트저널'은 2014년 1월 16일(인터넷판 기준) 브랑쿠시 조각 작품전에 관한 논란을 비판적으로 다뤘다.('Growing Furor over Brancusi Show in New York') 브랑쿠시(1876~1957) 사후에 그가 남긴 주형을 활용해 새로 만든 조형 작품의 가치를 두고 논쟁한다는 점에서 지금 부산에서 벌어진 논쟁과 비슷해 보이지만, 결은 매우 다르다. 이 논란은 애초 전시 주최 측이 브랑쿠시의 사후 작품 전시임을 밝힌 상태에서 시작했고, 공공 영역이 아니라 컬렉터와 갤러리 등 철저히 사적인 영역에서 이뤄졌으며, 사후 작품 제작 과정에서 의도된 '원형의 변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기사는 원작자 사후의 작품 제작이 "미술계의 오래된 논쟁"이라고 명기했다. 이는 미술 전문가들로 이뤄진 부산비엔날레 측이 'Lux 10-Busan'에서도 이런 논란을 촉발할 수 있음을 알면서 이 작품을 공공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왔을 가능성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성격이 완연히 달라진다. 행정기관이 보자면, '수영강변 일원 문화예술 환경 조성사업'의 기본 구조는 이렇다. "우리(수영구 등 행정기관)는 행정 지원과 예산을 맡을 테니, 예술 가치에 관한 판단은 전문성과 공신력이 있는 부산비엔날레에 위임하는 식으로 협력하자." 그런데 전문가(부산비엔날레) 측이 해당 작품이 미술계의 논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나, 사후 제작이나 원본 변형 등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진행했다면, 행정과 예술의 신뢰 관계는 깨진다. 이는 향후 공공 예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이 논쟁은 공공 미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Lux 10-Busan'은 시민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 미술의 한 주체인 일반 시민이 공감하거나, 단번에 다가기기 힘든 종류의 작품이다. '공공'을 위한 예술로서 과연 이것은 최선인가.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