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첫 스웨덴 여성유학생
- 옛 신문·잡지 바탕으로 구성
- 일제시대 강인한 여인 되살려

부산 소설계의 중견, 강동수 작가는 90년 전 짧지만,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한 여인에게 매료됐다. 10년간 그녀 인생 주변을 맴돌았고, 지난해 작정하고 글로 옮겼다. 1900년대 실존 인물 최영숙(1906~1932)의 일대기를 소설로 옮긴 '검은 땅에 빛나는'(도서출판 해성)이다.

	강동수 작가

'검은 땅에 빛나는'은 강 소설가가 2010년 '제국익문사' 이후 5년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강 작가는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소설집 '몽유시인을 위한 변명' '금발의 제니' 등을 냈고, 요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첫 장편 소재로 19세기 고종이 거느린 첩보기관 '제국익문사'(실천문학사)를 택했고, 두 번째는 같은 시대를 산 불꽃 같은 여인 최영숙을 만났다.

최영숙은 실존 인물이다.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중국에서 3년간 유학 생활을 했으며, 안창호의 흥사단에 가입했다. 스웨덴의 여성학자 엘렌 케이의 책에 감명받아 여성 노동운동가를 꿈꾸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스웨덴에 도착해 스톡홀름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했다. 아시아 최초 스톡홀름 여성 유학생이었다.

	'검은 땅에 빛나는' 표지.

스웨덴 구스타프 아돌프 황태자의 신임을 얻은 그녀는 스웨덴에 남으라는 황태자의 권유를 사양하고 유럽, 그리스, 이집트를 거쳐 귀국하던 중 인도의 청년 실업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와의 결혼을 뒤로 하고 조선으로 돌아온 그녀는 당대 신여성으로 주목받았으나 생활고와 사회의 편견에 부딪혀 재능을 펼치지 못했다. 조선 최초 소비자조합 '교남여자소비조합'을 만들어 콩나물 장사를 시작했으나 임신중독증과 영양실조로 출산 도중 사망했다. 나이 27세, 귀국한 지 5개월 만이었다.

소설은 최영숙의 삶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강 소설가의 표현에 따르면 "최영숙의 삶이 워낙 극적이라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삶이 소설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유학 시절 안창호를 흠모했던 그녀의 풋풋함과 자수, 베갯잇, 방석을 팔아 어렵게 살면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남몰래 눈물 흘렸던 유학 시절, 인도 청년 로이와 나눈 달콤한 사랑은 작가의 상상력에 올라타 그녀가 자신의 심리를 읊조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1932년 잡지 '삼천리'에 실린 최영숙의 기사.

작가가 최영숙의 삶을 소설로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0년 전이다. 한 잡지가 근대사에서 잊힌 인물을 조명한 글에서 최영숙 알게 됐고, 국립도서관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삼천리 등 옛 신문과 잡지를 뒤져 그녀 삶의 퍼즐 조각을 맞췄다. 강 소설가는 "최영숙은 이지적이고 매력적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한 신여성이었다. 하지만 당시 신문과 잡지에 등장한 그녀는 외국 남자의 아이를 낳다 사망한,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비련의 여인일 뿐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로잡아야겠다 싶어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과 유럽을 누비며 운명을 개척한 강인한 여성 최영숙의 삶은 편견에 부딪혀 허망하게 끝났다. 작가는 이 또한 있는 그대로 전해준다. 그는 "굳이 그녀의 마지막을 분량을 늘려 쓰거나 상상을 더할 생각은 없었다. 최영숙은 조선의 낡은 인습에 억압당하고 좌절한 인물이다. 좀 더 살았다면 근대 여성의 모델이 됐을 수 있다"면서 "불운한 시대에 운명을 개척한 근대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