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선생님 표 하나! 고자질한 애한테도 나쁜 어린이 표를 줘야지요. 나쁜 선생님 표 둘! 싸움은 지연이가 먼저 시작했어요. 나쁜 선생님 표 셋! 저도 발표 좀 시켜주세요. 나쁜 선생님 표 넷! 창기는 떠든 게 아니라 수학 문제를 물었을 뿐이에요." (29쪽)
선생님으로부터 '나쁜 어린이 표'를 계속해서 받은 건우가 억울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일기장에 늘어놓은 이 대목에선 얼른 다가가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써놓고는 '어쩌면 나는 진짜 나쁜 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들통이 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어른들의 일방적이고 무심한 태도가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다치게 하는지 보여준다.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도 유명한 황선미 작가가 쓴 나쁜 어린이 표는 1999년 처음 나와 국내 창작 동화 최초로 100쇄를 출간하며 100만 부를 돌파한 스테디셀러다. '작가의 말'에서 "힘들었지만 위로받을 기회도 없던 내성적인 여자애가 우연히 책을 만났고, 늦게까지 책을 읽어도 내쫓지 않는 선생님 덕분에 아슬아슬했지만 성장해 작가가 됐다"고 한 그는 "억울하고 외로운 아이의 마음까지 읽어낼 수 있는 어른을 기대하며 책을 썼다"고 밝혔다. '보잘것 없다고 함부로 여기지 않아 주었던' 스승의 마음이 지금의 황 작가를 만든 셈이다.

아이의 내면과 정서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작가의 시선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섬세한 묘사와 흥미로운 사건으로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하고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어설프고도 풍부했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나쁜 선생님 표'를 발견한 후 조용히 수첩에 챙겨넣고 '나쁜 어린이 표'를 내다 버린 건우를 야단치지 않는 선생님의 모습도 어쩐지 미워할 수 없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