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동안 한국적 성상화(ICON) 양식을 개척한 서상환(77) 화백이 첫 회고전을 연다. 성상화는 종교 사실과 관념을 사실적, 상징적으로 표현한 회화적 연출을 뜻한다.

	부산 수영구 민락동 미광화랑에서 만난 서상환 화백.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부산 수영구 민락동 미광화랑은 10일부터 오는 25일까지 '한국 성상화의 거장-서상환' 전을 연다. 1960년대부터 활동한 서 화백의 50년을 정리하는 첫 회고전이다. 1964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아겔다마'(피밭·Field of Blood·1962)부터 '교회의 죽음'(1979~1980) '일즉다'(2015)까지 그의 작품 여로를 보여주는 유화 판각 목판화 도자 입체조각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서 화백은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중학교 2학년 때 "조르주 루오처럼 종교화가가 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소서"라고 서원기도를 한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인임을 모르는 이들은 성상화 작품을 보고 한결같이 묻는다. "불교신자요? 기독교인이오?"

서 화백의 작품에는 예수의 얼굴이나 십자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에 나타난 색과 문양이 티베트 불교인 밀교의 만다라, 사찰의 단청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평생을 "서구 중심의 성서를 한국 문화와 연결시키는 토착화 신학을 시도"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통문화를 성상화에 접목해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사찰과 박물관을 수없이 찾아다녔다.

	1964년 첫 전시에서 선보인 '아겔다마(피밭)'.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20년이에요. 우리 심성에 깔린 유교 불교 도교를 걷어내고 서구의 방식으로 해석한 기독교를 일방적으로 이식하려고 해서는 안 돼요. 인도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이 그린 예수님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흔히 불교의 상징이라고 여기는 연꽃이나 물고기는 서 화백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다. 그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물고기와 연꽃을 새로운 눈으로 해석해 성상화에 접목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 연꽃 문양이 있었던 걸 아나요. 연꽃은 원래 이집트 태양신의 상징이었어요. 그걸 불교가 수용했을 뿐이에요. 물고기는 헬라어로 '이투스'예요. 기독교 초기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묘지(카타콤)로 숨어든 기독교인이 서로를 확인하는 암호가 물고기였어요. 물고기는 '신앙 고백'을 상징합니다. 지금도 카타콤 곳곳에 물고기가 그려져 있어요."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교회를 표현한 '교회의 죽음'(1979~1980). 미광화랑 제공

77세의 노 화백은 요즘도 오전 5시30분에 아뜰리에로 출근해 오후 6시까지 12시간 넘게 작업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기독교의 방언을 추상화한 '선화' 시리즈를 꾸준히 그리고 있고, 최근에는 모래 점토 등 다양한 재료를 물감과 섞어 활용하는 기법을 시도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 시대에 그의 성상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예수의 진정한 사랑은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 의식이 사회에 퍼지면 종국엔 자신도 구원받게 됩니다. 제 그림이 타인을 자기화하는 타자 지향적 삶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줬으면 합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