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연한 음악이 시작되자 방영미 춤꾼의 손에 들린 빨강과 노랑 천이 하늘 위로 솟았다. 허공과 도로를 휘젓던 천은 이윽고 소녀상의 눈물을 닦는 손수건이 되었고, 소녀의 꿈과 아픔을 품은 빨간 꽃 한 송이가 소녀상에 안겼다.

	지난 4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서 춤꾼 방영미 씨가 춤을 추며 소녀상을 위로하고 있다. 이 춤은 부산민예총 춤위원회가 주관한 '부산소녀상지킴이 예술 시위'의 한 순서였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지난 4일 오후 5시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후문 앞 도로. 성인 두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빠듯한 좁은 도로에 춤 무대가 마련됐다. 부산민예총이 주최하고, 부산민예총 춤위원회가 주관한 '부산소녀상지킴이 예술시위'의 첫 현장이었다. 부산민예총 춤위원회는 시민 후원으로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이 최근 논란에 휩싸이자 이를 지키기위해 예술 시위를 펼치겠다고 선언(본지 지난달 25일 자 9면 보도)했다.

첫 예술 시위에는 부산민예총 풍물굿위원회와 방영미, 박재현, 천권준, 박소산 등 여러 춤꾼이 함께했다. 이들은 소녀상이 겪은 아픔과 고난, 이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현대춤, 스트릿댄스, 전통춤 등 다양한 장르의 춤으로 표현했다.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옆 보행로에서 제대로 된 음향시설도 갖추지 못한 열악한 무대였지만, 소녀상을 지키겠다는 간절한 의지를 맨발과 온몸으로 표현한 춤꾼들의 열정과 예술인들의 응원이 더해져 현장은 열띤 분위기였다. 부산민예총 이청산 이사장의 소녀상 헌시 '멈춘 미래' 낭송부터 시위에 참여한 시민과 춤꾼이 어우러져 한바탕 잔치를 벌인 마지막 무대까지 소녀상을 지키려는 염원과 최근 불거진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향한 분노가 생생히 전달됐다.

민감한 현장이었던 만큼 경찰이 도로 주변을 둘러싸 주최 측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이 예술 시위를 불허했으나 부산민예총이 법원의 집회 금지통고 처분 취소를 받아내 공연을 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부산민예총 강주미 춤위원장은 "참여 의사를 밝힌 예술인이 늘어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이 장소에서 한층 풍성한 예술 시위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