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반성과 희망 담은
- 솔직한 글·맑은 그림 엮어내

- "괴롭고 힘든 일 속에서도
- 빛을 향해 살아간 흔적으로
- 아이들에게 용기 주고파"

〈平和(평화)〉. '한자의 위력과 심오함에/무릎을 치게 된다/"입에 밥이 공평하게 들어가야/가질 수 있는 平和!!!"'.('정말지 수녀의 그림일기' 중)

	부산 서구 마리아수녀회의 '알로이시오 가족센터'에서 정말지 대표 수녀가 최근 펴낸 '정말지 수녀의 그림일기'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부산 서구 암남동에는 알로이시오기념병원과 알로이시오초등·전자기계공고, 소년의집·송도가정 등을 운영하며 의료·교육·아동복지에 50년 넘게 헌신한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가 있다. 2012년 마리아수녀회 대표로 취임한 정말지(54) 수녀가 최근 '정말지 수녀의 그림일기' 책을 출간했다. 2014년 출간한 첫 에세이 '바보마음'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매일 일기처럼 쓴 짧은 글과 직접 그린 고운 그림을 엮었다. 책을 출간하느라 다시 쓰거나 그린 것이 아니라 글씨체도 그림도 일기장에서 그대로 스캔을 받아 만들었다. 자기 반성과 희망을 바탕으로 한 솔직한 글과 꽃·수녀·천사를 그린 맑은 그림이 어수선한 시국과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정 수녀를 따라 '지금 여기 감사할 일 10가지'를 적으며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고 싶어진다.

그는 매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성당에 머물 때 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일기라기보다 기도"다. 기도하는 방법으로 '쓰기'를 택했다. "하느님께 '오늘은 이랬어요, 제 마음은 이래요'라고 쓰면서 마음을 정리해요. 하루에 걸러지는 생각을 기도처럼 시처럼 써서 나 자신을 한 번 더 자극하고 다독입니다."

일이 막히거나 쉼이 필요할 때, 소임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할 때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쓰기도 한다. "멕시코 찰코 지역에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발자취를 알리고 영성을 되살리는 영성센터 건립을 준비하고 있어요. 다음 달에 착공해요. 이 일 때문에 일 년에 서너 번 멕시코를 방문해요. 긴 여행 짬짬이 공책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죠."

고 알로이시오 신부(1930~1992)는 1964년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했다. 한국에서 '소 신부님'으로 불린 그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봉사는 지난해 '오 마이 파파'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대중에 알려지기도(지난해 11월 12일 자 11면 보도) 했다. 마리아수녀회는 그의 뜻을 이어받아 필리핀 멕시코 온두라스 브라질 과테말라 등 5개국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정말지 수녀의 일기장 중 일부분. 일기장의 글과 그림을 추린 뒤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스캔해 책으로 엮었다.

정 수녀는 스물두 살에 마리아수녀회에 입회해 곧바로 필리핀 소임지에 파견됐다. 약 2년 뒤 알로이시오 신부를 돕기 위해 다시 멕시코로 파견돼 17년을 보냈다. "소 신부님이 돌아가시기 전 3년 정도를 신부님 가까이에서 살았어요. 살아계실 때도 소중했지만, 지금 오히려 그 존재가 더 소중합니다. 신부님이 여기 계신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신부님은 내가 하는 선택에 기뻐하시고 만족해 하실까 항상 생각합니다. 신부님은 중요한 잣대이자 멘토예요."

'가난한 사람들이 만족합니까' '당장 먹고 자는 것만 주는 건 의미가 없다. 가치관과 삶 전체가 바뀔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등 알로이시오 신부의 말씀은 정 수녀가 해야만 했던 수많은 선택의 기준이 됐다.

정 수녀는 그림도 그리고 싶고, 패션디자이너도 되고 싶고, 수녀도 되고 싶던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느 날 "수녀원에 가면 모든 일을 하게 될 거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정말 수녀원에 와서 그 모든 일을 하게 됐다. "후원자를 위해 카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소식지를 편집하고,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건축과 인테리어에도 신경씁니다. 제가 가진 재능을 300% 발휘할 수 있는 게 수녀의 삶이에요."

글쓰기는 자신을 위한 '힐링'이자 아이들과 졸업생에게 힘을 주는 방법이다. "우리 교육사업의 핵심 메시지는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영광은 인간이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제 책에는 괴롭고 슬프고 힘들고 기쁜 모든 일이 적혀 있어요. 우리 가족과 아이들, 졸업생들이 언제 어떤 장소에 있든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쓰길 바랍니다. 괴롭고 힘든 일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빛을 향해 살아가는 흔적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