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사회현실 풍자 7편 수록

장면마다 묘하게 현실의 모습이 겹친다. 소설같은 사건 전개도 있지만, 마냥 허구라고 넘기려니 현실과 비슷한 장면이 많다.

박명호(사진) 소설가의 세 번째 단편소설집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전망)에 실린 단편 7편은 우리가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많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분노가 살인이란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은 소설의 한 장면이 아닌 우리가 뉴스로 보고 듣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집은 역사에 관한 것과 사회 현실을 풍자한 단편만 모았습니다. 역사와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다 연애 소설로 널뛰는 게 어색하더라고요. 다음에는 제 전공인 연애 얘기를 담은 소설만 모아 소설집을 따로 낼까 싶습니다."

표제작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은 숲속에서 일어난 뻐꾸기 우화와 관련한 몇 편의 연작을 통해 집단화된 의식과 군중 심리를 꼬집는다. 직원을 인질로 잡고 월드컵 4강전의 재경기를 요구하는 범인에 동조한 시민이 급기야 반미 시위를 벌이는 장면과 소설가를 공개 처형하는 대중의 모습은 거대한 군중 심리가 어떻게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지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공덕비를 세우기 위해 역사 사실을 은폐한 가문의 이야기 '비(碑)', 중국 고구려 기행에서 착각의 함정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한 '착(錯)', 입시에 짓눌려 죽음을 선택한 학생을 통해 교육제도의 문제를 제기한 '역(易)', 건물 옥상에서 돈을 뿌리다 자신의 몸까지 던진 평론가 이야기 '돈 다 무심', 옛 가야의 흔적을 찾아 떠난 일본 여행에서 한·일 역사와 문화를 다시 고민하는 '고이노보리', 속임수를 쓰는 사내와 거기에 기대 덕을 보려는 인간의 얄팍한 심리를 비판한 '뻐꾸기 소리 근처' 등은 독자에게 강렬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던진다.

"소설 중에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도 있고, 현실을 기반으로 추측 가능한 일을 상상해 쓴 것도 있어요. 소설집을 내고 보니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장면과 겹치는 부분이 있더군요.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는 책 머리말에서 '남들이 우우 몰려가는 데는 같이 가기 싫다. 눈 감고 코끼리 다리를 어루만지기보다는 말을 타 보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으니깐'이라고 밝혔다. 다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지키고 싶음을 드러낸 것이다.

"제 기질이 그래요. 정치, 사회, 이념 등 모든 것에서 소수를 선택한 것 같아요. 사회의 가벼움과 무거움에서 갈등하다 보니 역사와 사회의 본질에 관심을 갖고 글로 쓰죠. 다음 책도 역사 소설이 될 것 같아요."

박 소설가는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장편소설 '가롯의 창세기' '또야, 안뇨옹', 소설집 '우리집에 왜 왔니' 등을 펴냈다. 부산작가상과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고,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