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라 랜드(la la land)'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가 자리한 도시 로스엔젤레스의 별명이자 환상의 나라, 꿈의 세계를 뜻하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라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삶의 질곡을 견뎌내는 연인의 러브스토리이자, 삶의 환상과 실재 사이에 놓인 거대한 심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할리우드로 온 미아와 세바스찬은 우연한 계기로 사랑에 빠지고 서로 격려하며 각자의 꿈을 향해 노력한다. 그러나 영화 같은 삶을 꿈꾸는 이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재즈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세바스찬의 감정처럼 '라 라 랜드'는 '사랑은 비를 타고'(1952)와 '파리의 미국인'(1951) '밴드 웨건'(1953) 등 과거의 유물이 된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에 바치는 헌사다. 2.55대 1 비율의 시네마스코프 영상에서 펼쳐지는 재즈와 춤, 테크니컬러(천연색 색채 영화의 한 방식)가 황홀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관객 29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 중인 이 영화에 대한 호응을 단지 복고의 정서에서만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영화는 외형적으로는 고전의 미학과 형식을 이어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현대를 사는 청춘의 이야기로 동시대 관객의 심정에 조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아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틈틈이 배우 오디션을 준비하고, 세바스찬은 당장의 일자리를 위해 영혼 없는 연주를 해야 한다. 오디션에 낙방을 거듭하던 미아는 극장을 빌려 1인 극 공연을 하지만 냉담한 반응을 얻고, 세바스찬은 미아와의 장래를 위해 꿈을 포기한 채 수입이 보장된 밴드의 길을 택하나 그것이 도리어 관계의 어긋남을 부른다.

열정은 식고 두 사람은 꿈과 안정된 삶, 일과 사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 '사랑은 비를 타고'가 성공과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낙관주의로 현실의 어두운 그늘을 지워버린다면, '라 라 랜드'는 뮤지컬 시퀀스의 아름다움만으로 덮이지 않는 청춘의 고뇌와 역경에 방점을 찍는다. 성실히 일하고 노력하지만 현실의 냉엄한 벽 앞에서 무너지고 실패를 경험하며, 때론 앞날을 위해 사랑마저 포기해야 하는 이 시대 청춘의 서글픈 자화상이 때때로 환상적인 순간을 빚어내는 영화의 바탕에 투영되어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아닐까?

영화의 감정선은 계절을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간다. 겨울날 재즈 클럽에서 만난 남녀는 봄에 사랑을 꽃피우고 여름날 서로의 꿈과 열정을 불태우며, 서늘한 가을날 인생의 좌절과 관계의 종말을 맞았다. 그리고 5년 뒤 겨울, 배우로 성공한 미아가 우연히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을 찾게 되는 영화의 결말에서 엄청난 위력의 감동이 몰아친다.

과거의 꿈은 현실로 이뤄졌지만, 어쩌면 두 사람이 이룰 수 있었을 또 다른 삶, 행복한 가정의 꿈은 환상이 되어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회한과 상처로 남는다. 현실을 재현하면서도 더욱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비극의 본질이라 한 사람은 '시학'의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런 의미에서 '라 라 랜드'는 찬란한 비극이자, 부박한 시대에 내던져진 청춘에게 바치는 한줄기 작은 위안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