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모음집 '시조, 달리다' 펴내

'눈이 내리네 펄 펄 내 마음 비인 뜰에/그날 그 사랑을 타이르며 타이르며/山河는 가슴을 닫고 돌아 앉아 있어도…'

"이영도 시조시인의 '눈' 이란 작품입니다. 눈이라는 매개를 통해 누구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숨겨진 사연을 담고 있죠. 사연의 주인공이 청마 유치환 시인이라는 사실 아셨나요?"

정갈하고 간결한 시조 한 수를 읊더니 명쾌한 해설이 흘러나온다. 시가 아닌 시조를, 옛시조가 아닌 요즘 시어로 쓴 현대 시조를 들으니 조금은 생소하지만, 반갑다. 시조시인 최연근(사진·세계시조시인포럼 대표)이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그램 'HELLO, 시조'의 한 대목이다. 최 시인은 지난해 10월부터 TBN 부산교통방송(FM 94.9)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4시30분부터 10분간 'HELLO, 시조'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간 방송으로 내보낸 시조와 해설을 모아 '시조, 달리다(세계시조시인포럼)'를 펴냈다.

'HELLO, 시조'는 현대시조 2편을 읊고 해설을 들려주는, '시조'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다. 시를 낭독하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시조를 전면에 내세워 독립된 꼭지로 내보내는 방송은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다. 최 시인이 시조를 읊고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지난해 10월 처음 방송해 어느덧 55회를 맞았다.

지극히 드문 시조 방송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은 최 시인의 열정 덕분이다. 그는 KBS 기자로 활동하면서 시조를 놓지 않고 부지런히 써 199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한국바다문학작가상, 부산문학상(대상) 등을 수상했다. 2005년 퇴직 후 현대시조를 시민에게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세계시조시인포럼을 만들고 현대시조 대중화에 앞장섰다. 최 시인은 "가곡 '가고파'는 유명하지만, 곡의 노랫말이 시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에게 현대시조를 알릴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라디오가 좋겠다 싶었다. '친정'인 KBS를 포함한 여러 방송사에 타진했지만, 저작권료 문제 등으로 난색을 보여 난항을 겪다 TBN과 손을 잡았다"고 그간의 사연을 들려줬다.

도전은 성공했다. 방송이 나간 뒤 시조에 관심을 보이는 청취자가 늘고 있다. 그는 "최대한 청취자가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간결하고 쉬운 시조를 골라 들려주었더니 '시조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다음 방송이 기다려진다' 등의 메시지가 쏟아진다"고 흐뭇하게 말했다.

1966년 처음 시조를 쓰기 시작해 어느덧 시조 인생 50년을 바라보는 최 시인은 시조가 많은 이에게 사랑받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3개월 전 서울로 주거지를 옮겼지만, 방송을 위해 매주 부산을 찾는 열정도 이런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는 "시조의 독자가 적은 현실이 안타까웠고, 현대시조가 점점 대중에게서 잊히는 것 같아 이 일을 시작했다"면서 "시조의 존립 가치를 바로 세우겠단 사명감으로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에 방송되는 시조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뛰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