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두·가방 등 숙련공들, 산업화의 한축
- 해외 수제명품 떠받들며 기술자는 천대
- 첨단미래 블루칼라 다시 대접 받을 것

13세 소년이 있었다. 공부에는 그다지 취미가 없었고, 서울에 가서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고향인 전남 광주를 떠나 당시에 우리나라 최고의 구두 전문점이었던 서울의 명동기능제화에 들어갔다. 열심히 기술을 배운 소년은 19세에 업계에서 '선생님' 소리를 듣는 최고의 기술자로 성장했다. 올해로 구두 경력 56년인 유홍식 명장은 2006년에 드림제화를 창립했고, 2013년에 '서울 수제화 명장 1호'로 선정됐다. 그의 두툼한 손은 흡사 무두질한 가죽 같고, 굳은살이 가득하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수제화는 수백만 원짜리도 있다. 최고의 신발을 만드는 그에게 어느 날 한 보험사원이 찾아왔다. 보험사원은 긴 세월의 흔적이 배인 거친 손으로 구두를 만드는 유 명장을 보고 직업을 '일용잡직'으로 분류했다. 전순옥 씨의 소공인에 소개한 유 명장의 인터뷰 내용 중 한 장면이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제품을 만드는 장인의 손길. 뿌리와이파리 제공

'소공인'은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며 노동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전순옥 씨가 산업현장, 생활전선에서 기술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책이다. 소공인은 노동집약도가 높은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를 말한다. 그 기술로 우리나라의 1970~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철 지난 사양산업이라며 돌아보지 않는 사이에도, 소공인들은 의류봉제를 비롯해 수제화, 가방, 안경, 주얼리, 액세서리, 인쇄, 금속가공 등의 일을 지금도 담당한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고, 큰 회사에 취직하지 않았다고, 작업복을 걸치고 거친 손으로 구두를 만드는 모습만 보고서 천시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의 시각이다. 기술을 가지고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없으면 당장 일상생활을 유지하기도 힘들면서 말이다. 집을 짓고, 옷과 구두를 만들고, 농사 짓는 사람이 없다고 상상해보라. 최첨단 분야가 아니라서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대학졸업장을 가지고 번듯한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고 그들을 천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학업을 계속하지 못한 많은 사람이 산업현장으로 가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를 바탕으로 이 나라는 성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축적한 기술이, 손기술 하나는 세계 최고라고 인정받았던 그 기술이 지금 얼마나 전수되고 있을까. 우리는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으로 만든 명품'이라며 고가의 수입품을 사고 몇백 년을 이어오는 외국 회사를 부러워한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으면서 부러워만 하는 것이다. 답답하고 어리석은 노릇이다.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간다. 이 책 속에서 현재 맞춤 양복 기술을 배우고 있는 30세 청년은 말한다. "사무직으로 진로를 잡고 가늠해보면 대략 견적이 나온다. 그럴 바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의 숙련 기술을 익히는 게 더 낫다"고. 전순옥 씨는 블루칼라야말로 블루오션이라고도 말한다.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기술을 배울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을 인정하고 대우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기술을 쌓아가는 사람들, 그 기술을 인정받은 사람들의 당당함이 책 안에 가득하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내 손이 부끄럽다.

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