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문화재단 국제레지던시 선정
- 극단 타블라 라사와 3주 워크숍
- 함께 지내고 밤낮없이 토론하며
- 기존 작품 새 버전 만들어내
- 예술단체간 상호교류 협약도

"부산 예술가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도록 돕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지난달 미국 뉴욕 극단 '타블라 라사'와 3주간 공동 작업한 극단 배관공의 주혜자(왼쪽에서 3번째) 연출자가 공연 뒤 현지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극단 배관공 제공

극단 배관공 이지숙 PD의 '뉴욕 탐방기'는 쉴새 없이 이어졌다. 그는 지난달 1~22일 미국 뉴욕의 극단 '타블라 라사'와 극단 배관공의 공동 작업을 기획, 진행했다. 극단 배관공의 주혜자 연출자와 배우 진선미, 이효림 등 예술가 10명은 지난달 뉴욕을 방문해 타블라 라사와 3주간 함께 지내며 배관공의 대표작 '마이 디어 헬렌' 공연과 공동 워크숍을 진행(본지 지난달 2일 자 21면 보도)했다.

"'마이 디어 헬렌'은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한 작품이에요. 대사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신체극이고, 모든 이가 아는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죠. 연극계 선배를 통해 타블라 라사를 소개받았고, 영상을 보냈더니 공동 작업을 제안하더군요. 부산문화재단 '국제레지던시사업'에 선정돼 뉴욕으로 건너갈 수 있었는데 처음엔 얼마나 떨리던지…. 예술가가 동경하는 곳에서 새로운 공연과 색다른 공간, 선진 기부 문화까지 경험하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공동 작업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타블라 라사의 적극성 덕분에 밤낮없이 작품과 예술에 관해 토론하느라 쪽잠을 자야 했고, 현지 극장 공연 외에도 공동 워크숍을 통해 '마이 디어 헬렌'의 새 버전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뉴욕에 도착하기 4개월 전부터 매주 타블라 라사와 화상회의를 하며 작품과 연출 방향을 놓고 회의했어요. 화상회의의 한계도 있었지만, 소통은 잘 이뤄져 재밌게 작업했죠. 1인극 '마이 디어 헬렌'에 많은 배우가 앙상블로 등장하는 장면을 집어넣고 현지인이 이해하기 쉽게 무대장치를 바꾸는 작업 등을 통해 새로운 버전의 '마이 디어 헬렌'이 나왔고, 현지 관객의 높은 관심을 끌어냈어요."

해외 진출을 꿈꾸는 지역 예술가를 위한 성과도 얻었다. 극단 배관공이 입주한 부산의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와 타블라 라사가 입주한 히스패닉계 예술창작공간 '라 나쇼날', 콜롬비아영사관 등 5곳이 협약을 맺고 예술가 교류와 상호 공간 지원을 약속했다. 서로 부산과 뉴욕을 왔다 갔다 하며 레지던시 작업을 할 기회를 주고, 히스패닉계 예술축제 참여도 추진한다. 내년 8월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여성연극축제에 이번에 공동 작업한 '마이 디어 헬렌'을 공연하기로 이미 결정했고, '라틴아메리카 단편영화제'와 부산의 영화제가 교류할 방법도 모색한다.

"그동안 해외 진출이라면 대체로 세계적인 예술축제에 가서 작품만 공연하고 돌아오는 형태였죠. 하지만 이번 작업은 예술가들이 같이 지내고 교류하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새로운 눈을 떴다는 점이 소득이었어요. 공간 교류의 발판도 만들었으니 더 많은 부산의 예술가, 특히 연극인이 해외 무대를 경험할 수 있게 됐어요."

또따또가에서 5년간 일하며 지역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절감한 이 PD는 이번 경험으로 새 꿈이 생겼다. "지역 예술인의 해외 레지던시는 비용 등의 문제로 쉽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처럼 비슷한 조건의 예술집단과 창작공간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교류하면 돌파구가 생길 것 같아요. 지역 예술가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는 꿈을 실천할 방법을 이제 찾아야죠."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