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 공권력이 공공기능 상실하고
- 특정 개인 이익에 봉사한 사건
- 권력 속성 새롭게 보게 하고
- 민주주의 다진 순기능도 있어

- 2017 사목지침 '본당 복음화'
- 개별성당 예수정신 따르자는 것

"촛불집회에 나온 100만 명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수면 아래의 (최순실과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수많은 국민을 보지 못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숫자 놀음하는 사람은 오늘의 이 사건을 제대로 보는 정치가가 아닙니다."

황철수 천주교 부산교구장이 현 시국에 대한 견해와 내년 사목지침을 밝히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황철수 바오로 주교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기 위해 매주 거리로 나서는 100만 국민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침묵하는 4900만 명이 있다'는 식의 일부 정치인과 보수단체의 주장을 일축했다. 황 주교는 이번 사태를 "국가 공권력이 국민을 위하는 공공의 기능을 상실하고 사유화돼 특정 개인의 이익에 봉사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황 주교는 부산 울산 밀양 양산 김해의 성당 124곳과 45만 신자가 속한 천주교 부산교구의 교구장이다. 그는 천주교 부산교구청을 찾은 본지 취재진에 현 시국에 대한 견해와 2017년 사목 지침을 들려줬다.

국민 대부분이 현 시국에 우울함과 참담함을 느끼는 가운데 황 주교는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순기능을 꼽기도 했다.

황 주교는 "가톨릭 교회가 평소 정의구현 활동을 하고,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냈지만 지역주의와 국민이 가진 저마다의 정치적 프레임에 막혀 크게 영향력을 못 미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최순실 사건은 어떤 계기보다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부패한 이 정권의 속성을 모르고 지지한 30%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균열을 냈습니다. 누가 '콘크리트'에 이만큼 균열을 일으키고 의식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권력의 속성을 새롭게 보도록 깨우쳤고, 민주적 질서가 중요하다는 의식을 국민 뇌리에 심었죠."

박 대통령의 퇴진 등을 촉구하며 시국미사를 여는 정의구현사제단과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신자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황 주교는 "이 종교, 저 종교가 이름을 내세울 필요도 없을 만큼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이뤄졌다. 사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대열에 동참할 수도 있고, (집회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마음의 지지를 보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16년은 한 달 더 남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전례력에 따라 27일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천주교 부산교구의 내년은 2013년 시작된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 여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해다. 이에 따라 부산교구의 내년 사목지침은 '본당 복음화의 해'이다.

황 주교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적은 것이 복음서다. 복음은 예수의 정신과 삶이다. 개별 성당(본당)의 공동체가 예수의 정신을 따라 한 해를 살자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의 지난 4년에 대한 평가도 궁금했다. "신앙인도 욕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신앙의 정신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이 사회의 한 시민이자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황 주교는 1953년 경남 밀양 출생으로 대구 선목중, 대구 대건고를 졸업하고 독일 아이히슈태트 잉골슈타트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11월 제4대 부산교구장에 임명됐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