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 있어 안된다는 편견 지우고
- 예술활동 가능하다는 것 보여줘

- 차별 맞선 소수자 대변단체 모여
- 8~13일 문화다양성 페스티벌

흐릿하게나마 빛이 느껴지면 그것을 쫓아갈 텐데 사방팔방 거대한 셔터가 내려진 것처럼 모든 게 암흑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런 느낌이다. 그렇게 시력을 잃은 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시각장애인이 예술의 장을 마련했다. 부산문화재단이 올해 처음 여는 '문화다양성 네트워크 페스티벌'의 한 행사로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준비한 '어둠 속의 카페(11~13일·부산 서면 놀이마루)'다.

'어둠 속의 카페'는 시각장애인과 시각예술가가 만든 '암흑' 속 '예술'의 장이다. 시각장애인 10명이 그린 그림을 김세윤 작가가 3D 기술로 입체적 작품으로 만들었다. 전시 공간은 사방팔방 암막을 친 '깜깜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시각장애인이 직접 안내인(로드 마스터)으로 나서 입장객이 작품을 만지고, 냄새 맡고, 느끼도록 도운 뒤 그 경험을 그림으로 그려보도록 한다. 시각장애인이 상상해 그린 그림과 일반인이 촉각으로 느껴 그린 그림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는 것이다. 체험의 마지막은 미각 테스트다. 콜라와 사이다처럼 눈으로는 금방 구분하지만, 눈을 감고 마시면 헷갈리는 경험을 선사한다.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정미(사진) 소장은 "'어둠 속의 카페'는 우리가 얼마나 시각에 의존해 사는지 느끼고, 시각을 배제한 소리 냄새 촉각 등의 감각을 경험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에는 시각장애인이 로드 마스터로 나서는 체험공간이 있지만, 부산은 처음이다. 장애인의 솔직하고 화끈한 입담을 생중계하는 팟캐스트 '짜장면(짜증 나는 장애인들의 면담)'과 예술과 배리어프리의 연결고리를 찾는 '배리어프리 토론회'도 열린다.

이런 시도를 하게 된 것은 '장애인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아리 회원 30명은 하모니카, 기타, 오카리나, 연극 등의 활동을 하며 이를 공연으로 펼쳐왔다. 이번에도 평범하게 연주와 공연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지만 김 소장은 시각장애인을 설득해 그림을 그리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간을 마련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도 처음에 망설였지만 '엄마' '사랑' 등에 대한 느낌을 상상해 그림으로 그렸더니 놀랍게도 작품이 만들어졌다"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경험을 통해 '안 보인다'는 점을 보완하면 장애가 있어도 예술활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예술에 대한 갈망은 커지고 있다. 14년 전 시력을 잃은 김 소장은 "2000년대 이전에는 장애인에게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해주면 된다는 패러다임으로 그들을 모아 훈련하는 데 집중했지만, 요즘은 기술 발달로 장애인도 충분히 자립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그들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예술 영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 많은 사람이 '장애인이 예술을 할 수 있냐'는 편견으로 바라볼 때, 그들은 예술을 배우고 재능을 펼칠 무대를 찾고 있단 얘기다.

그는 "장애인이 활동할 환경만 마련된다면 그들도 사회에 섞여 함께 살 수 있으며, 이번 페스티벌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도 이런 가능성"이라 덧붙였다.

■문화다양성 네트워크 페스티벌

부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문화다양성 네트워크 페스티벌'은 우리 사회 소수자를 탁 트인 공간으로 불러내 그들 목소리를 듣는 행사다. 문화다양성에 뜻이 있는 단체 44곳이 참가하며, 오는 8~13일 서면 놀이마루, 국도예술관, 감만창의문화촌 등에서 열린다. 소수자를 대변하는 단체가 이렇게 다수가 된 것도 드문 일이다.

8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임현묵 정책본부장의 문화다양성 특강을 시작으로 이주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인권을 주제로 한 '잊음 영화제 이음', 가족 해체와 청년문제를 얘기하는 '정상 밖 정상 가족', 사할린 동포와 이슬람, 북한 이탈 주민의 삶을 전할 'IN 주민'이 열린다. 김유리 작가가 편견에 맞선 40인과 인터뷰한 '김유리의 지구인'도 눈여겨볼 만하다. 편견과 차별에 맞선 단체 20곳이 펼치는 게릴라 퍼포먼스와 '문화 다양성 선언'도 준비돼 있다. www.bscf.or.kr

[문화다양성 네트워크 페스티벌] 이미지 크게 보기 click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