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남자 주고 받는 말과 그림만으로
- 남은 가족 새 삶 찾는 여정 그려
- 빨강·파랑·노랑 수채화에 감정 담아

외국에 장기간 파견 나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엄마는 떠난 후였다. 그림책 '우리 가족'은 엄마의 부재 속에 갑작스럽게 둘만 남은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이렇다 할 배경 설명 없이 아빠와 아들의 대화로 시작한다. "아빠, 난 아빠가 엄마 역할까지 하는 거 바라지 않아." 아빠가 운전하고 아들은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다. 이 장면만으로도 독자는 이 가족에 엄마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책의 전개는 장면과 대화로만 이뤄진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아파트 단지를 지나 집으로 들어서며 나누는 대화가 이어진다. 마치 드라마 한 장면을 그림책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작가는 엄마가 떠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의 상상에 맡겨두고 싶다고 했다('작가의 말' 중). 책이 집중하는 것은 함께한 시간이 적지만 함께할 시간을 앞둔 아빠와 아들이다.

아빠가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엄마랑 지낸 시간만큼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들은 안다. 아빠도 아들과 가까워지기를 서두르지 않는다. 엄마의 부재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큰 배와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전한다.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사고가 날 수 있지만 그걸 신경 쓰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인생을 이야기하다 '엄마'를 떠올린다. 아들은 "엄마가 자주 울었어요"라며 엄마와의 시간을 회상한다. 아들은 짧은 머리에 휘파람을 자주 불던 엄마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빠는 "한 번" 들어봤을 뿐이다. 엄마가 떠난 이유가 무엇일지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아빠가 몰랐던 엄마와 아들의 시간, 아들이 몰랐던 아빠와 엄마의 시간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교집합을 만들어내며 두 사람을 더 단단히 잇는다.

도시 인근 항구로 아빠와 함께 간 아들은 커다란 배를 본다. 그 배는 두 사람이 함께 항해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비로소 남자 둘이 더듬더듬 찾아가는 삶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책 속 수채화는 빨강, 파랑, 노랑 삼원색만으로 그려졌다. 빨강은 아이, 파랑은 아빠, 노랑은 엄마를 상징한다. 세 가지 색으로만 그렸다 하기에는 색감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특히 수채화 기법은 아이와 아빠, 엄마의 심리를 보여주는 클로즈업된 얼굴에 담긴 슬픔을 잘 표현한다. 힙합 패션으로 항구 거리를 활보하는 아빠와 아들의 마지막 장면은 그들이 새롭게 시작되는 인생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