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물방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영토 중 유일하게 지상전을 치른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합니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이던 1945년 4월부터 6월까지 오키나와에서는 미국과 일본 간의 사활을 건 전투가 벌어지고 일본은 극렬히 저항합니다. 결국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납니다.
오키나와 출신 작가 메도루마 슌은 이 역사적 사실의 뼈대 위에 신비로운 상상력의 살을 붙여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과 상처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로 117회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습니다.
주인공 도쿠쇼는 낮잠을 자던 중 갑자기 한쪽 다리가 부풀어 오르고 발가락 끝에서 물이 솟는 기괴한 일을 겪습니다. 의식을 잃고 누운 도쿠쇼에게 어느 날, 누추한 군복 차림의 군인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치고 굶주린 군인들은 도쿠쇼의 발가락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마시기 위해 매일같이 찾아오고 도쿠쇼는 그들 중 한 사람을 알아봅니다. 그는 함께 철혈근황대원(오키나와 전투 당시 징집된 14세에서 17세까지의 소년병)으로 행동했던 고향 친구였습니다.
부상 당한 친구를 버리고 홀로 도망침으로써 친구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봉쇄되었던 기억 속에서 떠오르며 도쿠쇼는 찾아온 군인들 모두가 방공호에 버려져 죽어가던 전우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도쿠쇼는 자신의 발가락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마시는 친구에게 말합니다.'이시미네, 용서해도…. 이 50년을 내가 을매나 마음고생하며 살았는지 니가 아나?' 친구는 미소 지으며 대답합니다. '고마워. 이제야 갈증이 해소됐어.' 친구와 전우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도쿠쇼의 다리는 말끔히 나으며 소설은 끝납니다.
일본 문학 안에서도 오키나와 문학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될 만큼 역사적, 문학적인 면에서 독자성과 특수성을 띱니다. 류큐 왕국(오키나와의 옛 지명)의 일본 본토로의 강제 복속 그리고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기지 문제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현안이 몇 세대가 지나는 동안 오키나와만의 독특한 정서와 이념이 되어 오키나와 출신 소설가들을 통해 다양한 작품으로 형상화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가로 '칵테일 파티'의 오시로 다쓰히로, '오키나와 소년'의 히가시 미네오 그리고 메도루마 슌이 있습니다. 특히 현대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메도루마 슌은 소설 '물방울'을 통해 오키나와 전투의 비극이 전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오키나와는 우리의 섬, 제주와 여러모로 닮았습니다. 기후가 온화한 아름다운 섬으로 오래전 각각 탐라와 류큐란 이름의 독립국이었다는 역사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4.3사건과 오키나와 전투로 대변되는 피의 역사와 반강제적 미군기지 문제로 인한 정부와 주민의 첨예한 갈등이 교집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와 제주도, 두 섬 모두 현재 평화의 섬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진정한 이해와 화합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점 또한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소설 '물방울'은 서가에 꽂고 한국 단편집 한 권을 꺼내 듭니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입니다. 이제 제주 출신의 노작가가 들려주는 제주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볼 차례입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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