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 밀집지역인 울주 서생

- 마을과 주민들 모습 담아

- 병원 칼국숫집 등에서 전시

- 그림에 꼭 들어간 원전 돔 지붕

- 회피할 수 없었던 작가정신 담아

'이상한 전시회'가 울산 울주군 서생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갤러리에는 그림이 한 점도 걸려있지 않고, 병원과 우체국 칼국숫집 면사무소 등 마을 곳곳이 전시장을 대신하고 있다. 중견작가 정철교의 '서생, 그곳을 그리고 그곳에 펼치다' 전이다.

정 작가는 14번째 개인전을 새로운 방식으로 기획했다. 이른바 '길거리 전시회'다. 서생마을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 겸 자택을 비롯해 피자가게 카페 칼국숫집 복국집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 병원 등 10곳에 그림을 걸었다. 서생마을을 그린 그림을 서생마을 주민이 쉽고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아파서 병원에 온 할머니가 '아이고 그림 예쁘다'며 한참을 보고 가셨어요. 온 마을에 전시소식을 알려달라고 이장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작품을 보러 오라고 입소문을 냈습니다. 그림이 근엄한 매체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소통 도구란 걸 많은 사람이 느끼면 좋겠어요."

정 작가의 그림에는 서생마을 곳곳이 담겨있다. 서생초등학교 근처 신암문구점, 운암동이란 표지석 근처의 붉은 벽돌집, 달고 시원한 명품배로 유명한 서생배를 키우는 과수원, 환하게 웃으며 마을을 누비는 우체부 민병섭 씨…. 그런데 이 그림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가 있다. 고리원전의 둥근 돔지붕이다. 돔지붕은 크든 작든 그의 모든 그림 한 귀퉁이에 걸려있다. 돔지붕이 없는 그림을 보면 원전의 감시초소가 그려져 있다.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풍경에 굳이 원전 돔을 넣어 이질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생배로 유명한 이 지역에 5월이 되면 어떤 장소에서나 배꽃이 자연스럽게 보이듯이, 원전의 돔도 마을의 어떤 장소에서든 보입니다. 바닷가에 나가도, 고기를 잡다가도 고개만 들면 원전이 보입니다. 더는 의식되지 않을 정도죠. 저를 비롯해 화가는 무엇을 그릴까 늘 고민합니다. 어떤 사람은 혐오스러운 원전을 왜 그림에 넣냐고 말하지만, 제가 사는 이곳을 회피할 수 없었습니다."

서생마을 근처에는 고리원전 1~4호기부터 신고리 1·2호기, 앞으로 가동할 신고리 3~6호기 등 원전 10기가 가동 중이거나 가동 예정이다. 한 마을에 원전 10기가 몰려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 '특별한 현상'도 세월이 지나면서 마을의 일부가 됐다. 마을 사람들은 더는 원전의 돔을 이물질로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지인인 정 작가의 눈에는 달랐다. 작가는 5년 전 양산에서 이 마을로 작업공간을 옮겼다.

붉은 선을 채운 강렬한 원색의 하늘과 바다, 나무, 집들 사이에 몸을 낮추고 어울려 있는 원전을 보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 오랜 시간 조금씩, 천천히 접근한 포복한 적군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마을 곳곳을 전시장으로 삼은 건 당연하지 않은 원전의 존재를 알아봐 달라는 작가의 외침이 아닐까.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