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째 유기농법 기장 대리마을
- 추수 전엔 어김없이 메뚜기 잡이
- 페트병에 절반 넘도록 담아서
- 간장 설탕 소금 넣고 팬에 달달
- 황금들녘 바라보며 차린 술상
- 안주 좋으니 술이 술술 들어가

후드득 후드득~.

들판 여기저기서 메뚜기가 날아오른다. 사람 발길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메뚜기를 따라 사람들도 포충망을 휘두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깊어가는 가을, 황금색 물결 일렁이는 벌판에서 바야흐로 메뚜기잡이가 한창이다.

부산 기장군 용천면 대리마을 농민 최해모(왼쪽) 강덕칠 씨가 논에서 메뚜기를 잡고 있다.

메뚜기는 주로 식물의 잎을 갉아먹고 산다. 특히 벼가 익을 철에는 왕성한 식욕으로 벼 잎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메뚜기는 벼농사의 천적. "상잎(햇빛을 받는 제일 위의 잎)을 갉아먹으면 나락이 여물지 않고, 쭉정이만 남아요." 부산 기장군 일광면 용천리 대리마을 송태환(84) 경로회장의 말이다.

이 마을 논에 메뚜기가 지천인 것은 10여 년 전부터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부터이다. 논에 농약을 치면 메뚜기가 살지 못하지만, 농약을 줄이는 유기농 농법으로 영농을 하면 메뚜기가 극성을 부려 농사에 지장이 많다.

때문에 벼와 메뚜기가 서로 공존할 수 있도록 메뚜기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인지 대리마을은 추수 전 마을 사람들이 메뚜기 천렵을 한다. 메뚜기를 볶아 밥반찬이나 술안주로 특식을 즐기는 것이다.

■유기농 논에는 메뚜기들 뛰놀고

잡은 메뚜기를 볶아 술추렴 하는 모습. 나름의 풍류가 있다.

메뚜기는 배고프던 시절, 수확기 전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고 지금은 추억의 식재료이다. "어린 시절 논과 밭에서 한나절 메뚜기를 잡아 볏짚에 구워 먹곤 했는데, 얼마나 고소하고 맛이 좋았던지….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메뚜기를 잡아 볶아먹곤 하지요." 요리사인 김판철(62) 씨의 말이다. "한때는예, 맥줏집 안주로 메뚜기볶음이 억수로 인기가 많았어예. 술안주로는 첫 손구락 꼽히는 기 메뚜기였다 아입니꺼." 강덕칠(65) 씨가 말을 받는다.

이 마을은 10여 년 전부터 논에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달음산 기슭 공기는 맑고, 한가로운 마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하다. 마을 사람 최해모 씨와 김판철 씨, 강덕칠 씨 등이 반가이 맞아준다. "어떻게, 메뚜기는 좀 있습니까?" 혹 메뚜기가 없어 취재에 허탕이라도 칠까 노심초사하여, 사람 안부보다 메뚜기부터 챙긴다.

"버글버글합니더. 농약 안 치고 10년 농사를 지으니까네, 온 논에 메뚜기가 지천이라예." 농업경영인 최해모(56) 씨의 말이다. 100마지기(2만여 평)를 경작하는 농업인으로 '백진주'라는 벼 품종을 경작하고 있다. 찹쌀 맛이 나고 식감도 찹쌀처럼 쫀득한 느낌이라 인기란다.

나는 다짜고짜 "먼저 메뚜기를 잡으러 가자"고 닦달을 했다. 대리마을 주민 몇몇과 메뚜기를 잡으러 논으로 향한다. 병목 부분을 도려낸 페트병을 살림망 삼고, 메뚜기 잡는 포충망도 하나씩 들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까지 든든하게들 신었다.

■벼메뚜기, 방아깨비, 때때…

메뚜기 볶음 요리.

논둑에 들어서자 풀숲에서 메뚜기가 혼비백산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며 날아오른다. 누렇게 잘 익은 벼 위의 메뚜기를 포충망으로 낚아챈다. 허탕이다. 메뚜기는 요리조리 포충망을 피해 잘도 달아난다.

몇 번 허탕 끝에 벼메뚜기를 한 마리 잡는다. 이후 낚아챘다 하면 한두 마리씩 잡히기 시작한다. 점점 어린 시절 동심으로 빠져들어 간다. 포충망의 메뚜기를 살림망 페트병에 옮기기 위해 손으로 잡는데, 뻐팅기는 힘이 대단하다. 뒷다리를 힘껏 박차며 온몸으로 저항하는 품이 상당한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한 시간 잡았을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잡다 보니, 페트병 절반 남짓 메뚜기가 들어찼다. 모두 모아 보니 상당한 양이다. 잡은 메뚜기는 대부분 벼메뚜기, 방아깨비, 섬서구메뚜기 등이다.

벼메뚜기는 논이나 그 주변의 논두렁에 서식하는데, 보리나 벼 이삭을 주로 먹고산다. 예부터 메뚜기볶음의 주재료로 고소하고 바싹바싹한 식감으로 밥반찬이나 술안주용으로 사랑받았다. 방아깨비는 다른 메뚜기보다 몸집이 크다. 방아깨비의 긴 뒷다리를 쥐고 있으면 마치 방아를 찧듯 몸을 끄떡끄떡 절을 해 방아깨비라 한다. 특히 수컷은 앞날개와 뒷날개를 서로 부딪쳐 '때때때때' 하고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기에 '때때'라 불렀다.

섬서구메뚜기는 방아깨비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방아깨비보다 몸집이 작고 통통하며 뒷다리가 짧다. 수놈이 암놈보다 턱없이 작다. 수놈이 암놈 등에 올라타 짝짓기를 할라치면, 그 모습이 마치 아기가 어미 등에 업힌 것처럼 보인다. 간혹 이렇게 교미하는 메뚜기를 보면, 기어코 잡아서 낄낄대며 좋아라하던 되바라진 아이들도 있었다.

■메뚜기간장고추볶음은 어떤 맛

어린 시절 가을이 되면 온 들판을 쏘다니며 메뚜기잡이로 하루를 보냈는데, 톡톡 튀는 메뚜기를 잡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았다. 해가 질 때까지 잡은 메뚜기를 강아지풀에 줄줄이 꿰어 집으로 가져가면, 어머니께서는 프라이팬에 소금을 살짝 뿌려 달달달 볶아주시곤 했다.

잡은 메뚜기를 장만하여 메뚜기 요리를 한다. 최해모 씨 부인인 김쌍금(53) 씨가 익숙한 솜씨로 요리를 한다. '메뚜기볶음'은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메뚜기를 넣고 들들 볶다가, 메뚜기가 빨갛게 익으면 소금을 약간 뿌려 간을 한다. '메뚜기간장고추볶음'은 메뚜기를 달달 볶다가 간장과 설탕을 넣고 뒤적여 주다가 불을 끄고 땡초를 채 썰어 뒤적여 잔열에 익힌다.

메뚜기 요리로 소박한 술상이 차려진다. 대리마을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메뚜기볶음을 맛본다. 바싹바싹한 식감이 경쾌하다. 뒤이어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술안주로 그저 그만이다. 고추를 넣고 볶은 메뚜기는 은근한 짠맛과 달콤함, 땡초의 맵싸함까지 배여 씹을수록 깊은 맛에 밥과 함께 먹으면 좋은 반찬이 되겠다.

"맛있네!~ 그란데 메뚜기가 쪼매만 더 컸으면 좋을 뻔 했거마는. 메뚜기가 잘아서 덜 꼬시네." 송태환 옹의 말이다. "그래 말입니더. 그래도 풀내가 솔솔 나는 기 좋기는 좋네예." "와 아이라. 좋은 나락 묵고 큰 놈인데 맛 없으모 안되지."

한 잔 술에 한 점 메뚜기볶음이 어우러지고, 술자리는 제법 재미있게 익어만 간다. 어린 시절 메뚜기에 얽힌 사연에서부터 올해 벼농사 이야기까지, 말은 말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 이렇게 황금 들판이 붉게 물들 때까지 술추렴은 불콰하게 계속되는 것이다.

■미래식량으로 주목받는 곤충류

단백질을 80% 정도 함유한 고단백 식재료인 메뚜기. 무기질, 철분 등이 많아 성장기 어린이의 체력 보강이나 연로한 노인의 원기 회복에 좋은 영양식이다. 위장을 따뜻하게 보해 주어 입맛을 돌게 하는 효능도 있다.

요즘 부쩍 '곤충'을 가장 순수한 식재료, 미래의 식량자원으로 보고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구촌 여러 나라가 앞다투어 식량화를 서두른다. 일반 동물 단백질보다 월등하게 순수한 단백질을 보유한 곤충류, 특히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는 메뚜기의 식량화사업은 새로운 '미래 산업'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추세다.

아련한 유년의 추억음식 메뚜기. 오랜만에 어린 시절 동심에 흠뻑 빠진 하루를 보내며, 부산의 토속음식으로서 메뚜기 요리에 관심을 가져볼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