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 네트워크 통해 출연자 섭외
- 입소문 퍼지자 주민 등 찾아와
- 향후 아파트촌으로 진출 계획

첫 순서는 정관초등학교 합창단이 맡았다. 새싹 같은 어린이 9명이 호흡을 척척 맞춰가며 깜찍한 율동과 함께 동요 '말의 향기'를 불렀다. 분위기가 금세 달아올랐다. 얼마 뒤 92세의 피아니스트 제갈삼 선생이 무대에 올랐다.

부산 기장군 정관읍 병산리의 화가 송영명-시조시인 박옥위 부부 전원주택 '별 내리는 병산골 송예원'에서 지난 22일 제43회 문화공연이 열리고 있다.

제갈삼 선생은 부산 예술계를 대표하는 원로이며 한국 음악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이날 70년 전인 22세 때 직접 작곡한 '감성적인 감상곡'을 연주했다. 피아노와 연주자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된 원숙한 연주에 관객은 음악의 깊이를 제대로 체험했다.

송영명(왼쪽), 박옥위

지난 22일 부산 기장군 정관읍 병산리에 있는 전원주택 '별 내리는 병산골 송예원' 2층에서 '문화공간 숲(대표 박옥위)'이 주최한 제43회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화가 송영명(전 부산예총 회장) 씨와 시조시인 박옥위 씨 부부가 2010년부터 살고 있는 송예원은 2층에 100명은 거뜬히 앉을 문화공간을 갖췄다. 부산 예술계에 이름이 높은 부부는 2012년 이 문화공간에서 매월 마지막 목요일 작은 공연을 열기 시작했다.

매월 한 번 여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몇 년 뒤 격월 행사로 진행했고, 올해는 석 달마다 한 번씩 개최하는 등 약간씩 조정은 있었지만, 이 행사는 5년째 끄떡없이 열리고 있다. "정관면에 들어왔을 때 문화적인 기반이 참 약했어요. 그 뒤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젊은 주민과 어린이가 꾸준히 늘어나 신도시가 조성됐지만, 문화 자원이 빈약한 건 변함이 없더군요."(박옥위 시조시인)

부산의 대표적 예술가 부부는 각자 평생 쌓은 예술계 네트워크를 동원해 정관에 문화를 심는다는 마음으로 이 공연을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연이 입소문을 타면서 가까운 정관 아파트촌에서 오는 관객이 늘었다. 한 번에 10~15팀에 이르는 출연자를 섭외하고 관객에게 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출연료를 제대로 못 드리고 재능기부에 의지하는 편이죠. 때에 따라 제가 그린 작은 그림을 출연자에게 드리기도 합니다."(송영명 화가)

주민을 위한 가치 있는 행사란 점이 알려지면서 부산문화재단 부산은행 기장군 등의 후원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5년을 이어오니 정관에 사는 예술가와 동호인의 출연이 늘고, 정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많이 찾아오게 됐다. 이 점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박 시조시인은 말했다.

이날 공연에도 정관 젊은이들로 이뤄진 챔버오케스트라, 정관제일병원에서 목회를 하는 함종윤 목사(트럼펫 연주), 정관 주민 정경수 시인 등 '이 동네' 예술가들이 출연했다. 박 씨는 "정관 아파트촌의 입주자회의와 부녀회도 이런 예술행사를 열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했다. 송영명-박옥위 부부는 "오는 12월 행사는 정관 읍내 아파트촌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주민 스스로 문화행사를 치르는 날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이날 서병수 부산시장의 아내 권순진 여사와 오규석 기장군수의 아내 강미숙 여사가 나란히 앉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