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과 후손이 함께먹는 제삿밥
- 상에 올린 밥·나물·전 등을 비벼
- 탕국과 곁들여 먹는 맛깔난 음식
- 그것이 먹고싶어 헛제삿밥 생겨
- 지역마다 다른 조리법도 재밌어

- 한데 어우러진 '완벽한 골동반'
- 따뜻한 공동체 문화 오롯이 배어
- 화합의 음식 뜻 이어나가야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예법 중 하나인 제사(祭祀)는 돌아가신 조상께 음식을 바치고 '몸과 마음'을 다해 모시는 전통의 미풍양속이다. 이는 오늘을 있게 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행위이자, 후손에게는 관혼상제의 예법과 가문의 가풍을 가르치는 교육적 목적도 있다.

제사에 올렸던 밥과 나물로 지은 제삿밥. 탕국과 잘 어우러지는 제삿밥은 우리 음식문화를 이루는 어엿한 요소이다.

제사는 조상의 기일(忌日)이나 설, 추석 등 우리 고유의 큰 명절에 평소 조상이 좋아하던 음식이나 진설(陳設. 상차림)의 예법에 따른 음식을 바치는 일이다. 이는 저승의 조상과 이승의 후손이 서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소통의 행위'이자, 조상신들에게 불안한 미래를 어느 정도 맡기거나 기대는 '발복(發福)'의 의미를 가진다.

제사는 지방과 가문마다 상차림의 예법이 다르다. 진설 음식의 종류와 식재료의 조리방법 또한 마찬가지다. 서부 경남과 부산 등지의 일례를 들자면 바다 생선 등 해산물 진설이 풍성하고 지역의 다양한 나물과 각양각색 전도 중요한 상차림으로 등장한다. 갱(탕국)도 주로 해산물과 무, 지진 두부를 주재료로 끓여내 시원하면서 깊은 맛을 낸다.

■담박하고 그윽한 제삿밥의 풍미

제사 후 여러 종류의 전을 한데 넣고 찌개로 끓인 전찌개.

조상의 제사를 지낸 후 남은 음식은 가문의 사람들이나 가족이 나누어 먹게 된다. 메(밥)에다 각종 나물을 넣고 비벼, 제주(祭酒)와 함께 음복한다. 남은 전이나 생선으로는 지져 먹거나 찌개를 해먹었다. '제사밥상'이다.

제사밥상의 대표적인 것이 '제삿밥'이다. 제삿밥은 제사를 지낸 뒤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비벼 함께 먹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흰 쌀밥에 고사리, 도라지, 무채, 시금치 등의 나물과 명태전, 두부전, 애호박전 등 여러 가지 전을 채 썰어 비비고, 탕국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그래서 제삿밥은 제사에 쓰인 다양한 음식이 고명으로 들어가 맛깔을 아우르기에 '포용의 음식'이다. 각기 고명의 장점을 일궈내어 풍성한 맛을 만들어내기에 '화합의 음식'이기도 하다. 또한 개개의 맛과 성질이 하나의 맛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순화하므로 '순화의 음식'이기도 하다.

하여 제삿밥은 자기를 낮추는 '겸양의 음식'이고, 함께 살아가는 '상생의 음식'이며, 각각의 재료의 성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므로 '배려와 다양성'의 음식인 것이다. 이에 더해 조상과 후손이 함께 어울려 먹는 음식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음이다.

제삿밥은 오래전부터 반가(班家)의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인 식문화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최영년의 시집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 제사음식으로 비빔밥을 먹었던 풍습이 기록돼 있는 것을 보아도 쉬 짐작할 수 있겠다. 제삿밥의 그 맛이 얼마나 담박하고 그윽하였던지 많은 이들이 제삿밥을 먹기 위해 제사를 기다리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제사보다 젯밥'이다. 오죽하면 제삿밥이 먹고 싶어 주인 없는 헛제사를 지내고 제삿밥을 먹었을까?

헛제사를 지내고 먹는 제삿밥을 헛제삿밥이라고 하는데, 영남 사림파가 세거했던 경북 내륙의 대구, 안동 등과 서부 경남의 진주 등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조선성리학을 이끌었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을 따르던 영남 사림파 유생들이 먹었던 것이 그 기원이라 전해진다.

■부산 탕국, 서울 탕국은 다를까

제사에 올린 각종 나물.

제삿밥은 우리 전통음식인 비빔밥의 기원이기도 하다. 반가의 제삿밥이 제사를 지낼 수 없었던 상민들에게 전래되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이 된 것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각종 나물 등속을 밥 위에 얹어 쓱쓱 비벼먹는 방식으로, 서민은 집에 남은 찬을 이것저것 밥에 얹어 가족들과 함께 둘러 앉아 설렁설렁 비벼 먹었던 것이다.

제삿밥과 더불어 세트메뉴처럼 따라 나오는 음식이 '탕국'이다. 소고기, 무, 지진 두부, 문어, 건홍합 등 다양한 식재료를 가마솥에 넣고 은근한 불에 오래도록 끓여내면,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끝 갈 데 없는 탕국이 만들어진다. 나물 요리와도 잘 어울리기에 제삿밥에는 탕국이 빠져서는 안 될 음식 중 하나이다.

탕국은 지방에 따라 또 가문의 가풍에 따라 들어가는 식재료와 조리방법이 각양각색이고 천차만별이다. 육수만 해도 소고기, 닭고기, 꿩고기 등으로 나뉘고, 건해산물을 주로 쓰는 곳이 있는가 하면 생해산물을 쓰는 곳도 있다. 때문에 어떤 곳은 담백하고 시원한 반면, 어떤 곳은 진하고 깊은 맛을 내기도 한다.

제사밥상 중 또 하나의 음식이 '전찌개'이다. 제사 후 남은 다양한 전을 냄비에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음식이 바로 '전찌개.' 밑간을 하여 기름에 지진 전으로 찌개로 조리하기에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남다르다.

냄비에 남은 탕국이나 따로 만든 육수를 넣고 끓이다가 전을 넣고 간장과 고춧가루 등으로 간을 맞춘 후 입맛에 따라 땡초나 파 등속을 넣으면 얼큰하고 진한 맛의 '전찌개'가 완성된다. 제사상에 올린 생선을 넣고 끓이면 더욱 깊고 시원한 맛을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식재료가 한데 섞여 맛을 내기에 전 하나하나 각각의 맛을 일별해보는 재미도 있다. 부드럽게 풀리는 전과 짭짤한 국물이 만나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맛 또한 흔쾌하고 쏠쏠하다.

■소중한 민족음식이자 문화자산

제삿밥을 비빈다. 모든 고명이 뒤섞여 비벼진다. 고슬고슬 따뜻한 흰밥, 각양각색 나물과 전과 고명이 푸릇푸릇, 노릇노릇, 알록달록하다. 그 위에 구수한 참기름 넉넉하게 두르고 조선장으로 간을 본다. 다 비벼놓고 보니 밥상이 절정이다. 신록이 푸르다가 화사한 단풍 속 흰 눈발이 펄럭인다. 한 음식에 사계절이 다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한 숟갈 크게 입에 넣는다. 구수하다. 연이어 다양한 식감의 향연이 펼쳐진다. 꼬들하고, 부드럽고, 들큰하고, 짭짤하고… 마치 잘 갈무리된 관현악의 연주를 듣는 듯 기꺼운 맛을 낸다. 각각의 재료가 섞이고, 각각의 맛이 한데 어울리면서 하나의 맛으로 합일된다.

탕국 한술 뜬다. 시원하다. 그리고 깔끔하다. 그러면서 입안의 나물 향을 북돋워주기에 이 또한 즐겁다. 탕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진하고 깊어져서 좋은 음식이다. 제삿밥 한 숟갈에 탕국 한 술 떠야만 제삿밥의 완벽한 조합이 이뤄지는 것이다.

짭조름한 전찌개도 한 술 뜬다. 묵직한 국물 맛이 제사밥상의 중심을 잡아준다. 다양한 맛깔의 제삿밥과 개운한 탕국과 달리 얼큰하고 강한 양념이 다소 느슨하던 밥상의 리듬을 조화롭게 한다.

예부터 비빔밥을 따로 골동반(骨董飯)으로 불렀다. '한데 섞어 먹는 밥'으로 풀이해도 되겠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제사밥상'이야말로 완벽한 '골동반'이다. 각종 나물을 섞어 비벼 먹는 제삿밥이나, 다양한 뭍의 것과 바다 것들을 한데 끓여 국을 내는 탕국, 이런저런 전을 한데 모아 새로운 찌개 형태로 만들어낸 전찌개.

이 '제사밥상'은 함께 모여 밥상을 만들고,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우리 민족의 따뜻한 공동체 문화가 오롯이 배어있고 쟁여져 있는 음식이다. 민족음식의 고갱이라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