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

- 찬바람 불어야 지방 붙어 제맛
- 우리나라 전역서 잡히지만
- 살 두껍고 단단한 명지산 으뜸
- 돈 아깝지 않다 해 '전'자 붙어


◆대하

- 서해서 서식…왕새우로도 불려
- 중국선 스태미나식으로 통해
- 조선 미식가 허균은 알젓 즐겨
- 정약전도 "달콤하다" 탄복


강촌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넓고 맑은 물에 실컷 즐겨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인간세상 돌아보니 멀도록 더욱 좋다.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추사(秋詞)에서-


무더위가 가실 줄을 모르건만 어김없이 가을의 전설은 찾아왔다. 전어(錢魚)와 대하(大蝦)가 그 주인공. 전어는 동해 일부, 통영·남해·사천·광양·보성 등 남해 중서부, 목포·부안·서천 등 서해에서 많이 난다. 남해에서는 8월 중순부터 나오기 시작하며 서해에서는 이보다 조금 늦은 8월 말부터 나온다. 대하는 주로 서해에서 난다. 태안·보령·안면도·무창포·소래 등이 대하 산지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전어와 대하는 우리와 친숙했다. '가을 전어에는 깨가 서 말이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 '물 넘은 전어', '새우로 잉어 잡는다', '새우 벼락 맞던 이야기한다', '새우 싸움에 고래등 터진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등 관련된 속담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돈도 아깝지 않다, 전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듯이 조석(朝夕)으로 찬바람이 들 때면 전어가 제맛이다. 전어는 청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정약전(丁若銓·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큰 놈은 한 자 정도로, 몸이 높고 좁으며, 검푸르다"고 했다. 봄에서 여름까지가 산란기인데, 이때는 맛이 없고 가을이 되어야 몸에 지방이 들어 차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가을 전어에는 깨가 서 말이다'라든지,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라는 말들은 가을에 전어가 기름을 가득 품어 고소한 맛이 일품임을 이른 것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전어를 '화살 전'자를 써 전어(箭魚)로 표기했고, 서유구(徐有榘·1764~1845)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돈 전'자를 써서 전어(錢魚)로 표기했다. 서유구는 그 이유를 설명했는데, 그것이 자못 흥미롭다. 그는 "상인은 (전어를) 염장하여 서울에서 파는데 귀천(貴賤)이 모두 좋아한다. 또 그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말해 전어 이름에 '돈 전'자가 붙은 것은 그 맛이 너무 좋아 돈도 아깝지 않은 물고기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그만큼 당시 사람들은 전어 맛에 빠져 있었는데, 정약전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달콤하다"는 짤막한 한마디로 전어 맛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흑산도 전어는 육지에 가까운 곳에서 나는 전어 맛에는 못 미친다고 했다.

1530년(중종 25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전어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함경도에서 났다고 한다. 또 영조(英祖) 때에 편찬된 '읍지(邑誌)'들에서는 황해도를 제외한 조선 전역에서 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18세기로 오면서 산지가 확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전어는 우리 바다에서 흔히 나는 물고기가 되었다. 1903년에 간행된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을 보면 전어는 우리 연해에서 풍산(豊産)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가덕도·거제도·진해·고성 연해에서 많이 잡힌다고 했다. 요즘도 가덕도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명지는 전어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해마다 전어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명지 전어는 살이 두껍고 단단해 다른 지역 전어보다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전어는 비늘을 벗겨낸 뒤 뼈째 썰어 회로 먹거나 석쇠에 올려 구워먹는데, 전어 기름이 씹을 때 고소함과 구울 때 특유의 향내를 더한다. 전어는 회나 구이 외에 젓갈을 담가 먹어도 좋은데, 젓갈로는 전어 새끼로 담근 엽삭젓, 내장으로 담근 전어속젓, 내장 중 위만을 모아 담근 돔배젓이 있다고 한다.

■바다의 노인, 대하

서해에서는 대하도 전어 못지않은 가을의 전설이다. 대하는 보리새우과에 속하는 새우로 왕새우로도 불린다. 정약전은 대하를 세밀하게 관찰한 뒤 그 모습을 '자산어보'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대하는) 길이는 한 자 남짓 되고 빛깔은 희고 붉다. 등은 구부러지고 몸에는 껍질이 있다. 꼬리는 넓고 머리는 돌게를 닮았고 눈은 튀어 나와 있으며 두 개의 붉은 수염이 있다. 수염의 길이는 그 몸의 세 배나 된다."

대하는 등이 굽고 몸의 세 배나 되는 긴 수염을 가진 탓인지 중국에서는 '해로(海老)'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하를 노인에 빗대 그렇게 부른 것이다. 대하는 바다의 노인이란 별칭을 가졌지만 이에 걸맞지 않게 왕성한 스태미나를 자랑하는 녀석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에서는 출장 가는 남편에게 대하를 먹이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라고 한다.

대하는 주로 서해안에서 잡힌다. 과거에도 비슷해 1481년(성종 12년)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대하는 경기도·충청도·전라도·황해도·평안도에서 난 것으로 확인된다. 남해에서는 대하가 드문 대신 보리새우가 나며, 제주 근처 바다에서는 닭새우가 잡힌다. 과거 경상도 토산물 가운데에는 자하(紫蝦)란 것이 있었는데, 이는 새우가 아닌 곤쟁이이다.

대하가 전어와 함께 서해를 대표하는 가을의 전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어처럼 맛이 좋아서였다. 정약전은 전어 맛이 그렇듯이 대하 맛도 "매우 달콤하다"며 치켜세웠다. 서유구도 대하를 좋아했다. 그는 '난호어목지'에서 "(대하는) 회에 좋고, 국으로도 좋고, 그대로 말려서 안주로도 한다"고 기록했다. 허균(許筠)은 대하 알젓을 좋아했다. 스스로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허균은 탐식가이자 미식가였다. 그는 한석봉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평생 구복(口腹)만 위한 사람"이라고 적었고, 유배지에서 기윤헌(奇允獻·1575~1624)에게 편지를 띄워 "새우도 부안만 못하고, 게(蟹)도 벽제(碧隄) 것만 못했습니다. 먹을 것만 탐하는 사람으로서는 굶어서 죽겠습니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중앙에서 관직생활을 하기보다는 지방 수령으로 가기를 원했다. 비록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맛의 고장으로 알려진 남원이나 생선과 게가 많은 부여의 수령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귀양 중에 '도문대작(屠門大嚼)'(1611년)이란 책을 썼다. 미식가였던 그에게 귀양지에서의 거친 음식은 큰 곤혹이었다. 이에 그는 이전에 먹었던 좋은 음식을 떠올리며 이 책을 썼던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하는 "주로 서해에서 나며 알로 젓을 담그면 매우 좋다"고 했다. 대하의 알 맛마저 놓치지 않는 미식가다운 면모가 엿보인다.

한편, 유중림(柳重臨·1705~1771)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 대하를 쪄서 볕에 말려 두고 겨울에 먹는다고 소개했다. 1809년(순조 9년)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엮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대하가 열구자탕(悅口子湯)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고 소개되어 있다.

유난히도 더운 날들이 계속되지만 곧 이 지긋지긋한 더위도 물러가고 거리에는 가을의 전설, 전어와 대하 굽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제철에 나는 먹거리가 우리 몸에 가장 좋다고 하니 올 가을 전어와 대하로 원기를 보충하고 각자의 전설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