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부두를 산책하던 중 이상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 아주 커다란 이(치아)를 사게 된다. 어른의 어금니와 닮은 주먹만 한 이에서 거인들의 나라로 가게 되는 지도를 발견하게 된다. 우여곡절을 겪은 나는 기어이 거인족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는 아홉 명의 거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혀와 이를 포함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불구불 한 선, 소용돌이 선, 나선, 극도로 복잡한 점선들…. 환상적인 미로에 언뜻 드러나는 그것은 나무, 식물, 동물, 꽃, 강, 대양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그려진 악보는 한밤중에 그들이 하늘에 대고 부르던 기도의 음악에 대지가 화답하여 부른 진정한 노래였다.

지리학자인 나는 거인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모든 것을 자료로 만들어 집으로 돌아온다. 한심한 지리학자인 나는 명예욕 때문에 훗날 큰 재앙이 몰려온다는 것을 모른다. 이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5권의 책을 썼다. 드디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거인족의 나라를 증명해 보이려고 두 번째로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이 일어났다. 나에 대한 명성이 벌써 알려져 거인족의 나라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한탕 주의자들은 아름답고 숭고한 거인 안탈라의 머리를 베어 수레에 끌고 온다. 아! 거인족의 나라에는 이제 거인이 살지 않는다. 무모한 일을 저지른 나로 인하여, 내가 아니 우리는 그 안탈라의 피부에 그려진 아주 조그만 미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온갖 소란 속에서 분노와 공포와 고통에 사로잡혀 침묵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깊이를 모를 심연의 슬픔, 그 밑바닥에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아! 너무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말했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본문 74쪽-

이 책에서의 거인은 모든 생명이 숨 쉬고 살아가는 터전인 대자연이다. 인간은 거인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아주 조그만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연의 인자한 품에 살며 마구 품을 파헤치고 상처를 준다. 언제 부턴가 자연의 새로운 신비로움이 세상에 알려지면 얼마 가지 못해 그 신비로움은 인간의 발자국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게 되었다.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은 명예욕에 눈이 먼 나 때문에 살육을 당하고 말았다.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이라고 했다. 자연의 신비가 세상에 알려지고, 사람이 만든 길 위에서 동물이 죽어간다. 간직해야할 비밀을 들춰낸 한심한 지리학자인 나로 인하여 죽은 거인의 나라에 새로운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말한 것처럼 우리 스스로가 부숴버린 이 지구에서 제6의 대절멸 사건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필화 사건을 몰고 온 한심한 지리학자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어느 곳에 새겨져 있다. 학자의 명예보다 살아 있을 거인 족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이에 그려진 지도를 해독하지 않고 있을 또 다른 현명한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안탈라의 절망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