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불경을 읽기 시작한다. 뜻밖의 풍경이자 사뭇 감격스러운 일이다. 불법의 실천이 자유롭고, 다채로우며, 활기에 넘치는 삶을 선물한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면서도 그것을 가족과 함께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생각하고 이해하는 일과 그것을 실천하는 일에 간극이 있다는 원리는 불법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러니 온갖 인간적 약점을 매일 들키는 남편이 아내에게 불교적 가르침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에 속한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서암정사에 있는 관음보살상.

아내는 어떻게 불경을 읽게 된 것일까?

고등학교에 다니던 처조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가고 한숨 돌리는 사이 아내는 조카의 공부에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주말이나 휴일에 조카를 데려다 공부 시키고, 학업계획에 대해 처제와 이런저런 의논을 하는 일에 보람까지 느끼는 눈치였다. 이렇게 자주 만나며 정이 푹 들었던 조카가 말도 안 되게 스스로 삶을 내려놓아 버린 것이다. 49재를 지내는 동안 아내에게 눈물과 한숨이 떠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49재가 끝난 뒤 아내는 죽은 조카를 위해 불경을 읽어주기로 결심한 듯하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죽은 뒤에도 조카는 여전히 현실성을 갖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내에게 불경은 아직 난해함 그 자체이다. 생소한 단어가 그렇고, 불이중도(不二中道)를 표방하는 불교적 사유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질문이 쏟아진다.

그 중 하나가 왜 불경에서는 아직 끝나지도 않은 설법에 대해 '이 경전'이라 부르냐는 것이었다. 좋은 기회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부처의 설법을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이 경전이다. 그러니까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신의 설법을 스스로 '경전'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말이 성립하는 것이 불교이다. 부처의 설법은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설법은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이것에 진리가 온전히 드러나 있음을 믿고 확인하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관철한다. 그래서 불경에서 말하는 이 '경전'이란 지금 당장 이것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진리를 확인하고 그것에 맡기는 일을 가리킨다. 결국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과 나를 둘로 나누고, 선과 악을 나누며, 옳음과 그름을 나누는 살림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지금 이것으로 다가온 인연이 100% 순도의 진리가 드러나는 자리임을 알아 유감없이 수용한다는 뜻이다.

이런 입장이 되면 삶의 현장이 모두 불교가 약속하는 바로 그것임을 알게 된다. 흐르는 강물을 앞에 두고 선사가 제자에게 진리를 말해준다. '물살이 빠르다'. 강을 앞에 둔 선사에게는 흐르는 강물이 진리이다. 이렇게 흐르는 강물을 두고 '빠르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눈앞에 대숲을 두고 '이 대나무는 짧고 저 대나무는 길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 이 뜰 앞에 잣나무를 두고, '뜰 앞의 잣나무!'라는 말 외에 달마의 가르침을 어떻게 따로 설명하겠는가?

그러므로 아내여! 죽은 조카가 지옥을 벗어나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도하지 말라.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택하는 선택의 길을 걷지 말라. 그저 우리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듣고,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아는 이 순간에 죽은 조카는 이미 극락의 주민으로 살고 있음을 완전히 믿고 완전히 안심하라. 그것이 조카를 위한 불경읽기이다. 아내는 아직 어리둥절하다. 매일 치졸한 살림을 들키는 남편의 이 말을 믿어도 좋은 것일까?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