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례 제물·혼례 이바지 음식부터 쫄깃한 술안주·아이들 과자까지
-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문어

- 무척추동물 중 뇌 구조 가장 정교
- 똑똑하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축구경기 승패 맞추는 진풍경
- 선비의 고장 안동 사랑 남달라

- 피로 해소 타우린 성분 풍부, 더위에 상한 몸 문어로 회복도


군대를 부릴 때는 지조를 연상시킨다면

적을 소탕할 땐 맹호가 양 떼를 습격하듯

한 경내가 그 그늘에 의지함은 물론이요

삼한이 모두 그 공적에 고개를 숙인다오

해가 떠오르나니 하늘이 바다에 잇닿았고

산이 가깝나니 나무가 구름에 떠 있는 곳

전쟁을 종식할 계기가 이제 마련됐는지라

보내오신 고기 이름도 바로 문이로구려

-이색(李穡)의 '동경(東京)의 윤공(尹公)이 전운(前韻)에 화답하면서 문어(文魚)를 보내왔기에 붓을 달려 답하다'-



지금 경남 사천 앞바다에선 문어(文魚) 잡이가 한창이란다. 6~9월 사이가 문어 낚시의 제철이기 때문인데, 요즘엔 평일 500여 명, 주말 2000여 명의 강태공들이 몰려들어 그야말로 사천 일대가 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문어는 우리와 꽤나 친숙한 해산물이다. 제례에선 제물로, 혼례에선 이바지로, 애주가들의 술상에선 쫄깃한 식감으로 술 맛을 더해주는 안주로 우리 가까이 있다. 어디 이뿐인가. 아이들 사이에선 문어 맛 과자가 인기를 끌고 있고 동요와 각종 애니메이션에선 머리 좋은 '박사' 로 등장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사정은 비슷했나보다. '동아일보' 1939년 7월 8일자 기사를 보면 문어는 연산(年産) 10만 원 이상의 수산물 56종 중 27위를 차지한 해산물이었다. 그만큼 우리가 문어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다.
■글을 아는 양반 물고기(?)

문어란 이름의 '문'자는 '글월 문(文)' 자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유교 문화의 본 고장이랄 수 있는 안동(安東)에서 문어는 혼례, 상례, 제례 등 각종 의례 때마다 빼놓지 않고 상에 올리는 해산물이 되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천위(不遷位·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祠堂)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 제사를 모시는 14개 가문 중 11개 가문에서 탕(湯), 포, 적(炙)에 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안동 사람들의 특별한 문어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있었다. 2003년 추석 직후 안동에서는 700여 명의 식중독 환자가 동시에 발생했다. 그런데 역학 조사 결과 문어가 그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추석 차례를 위해 각 가정에서 준비한 문어가 더운 날씨 탓에 식중독을 일으켰던 것이다.

안동 사람들의 문어 사랑이 이름에 '글월 문' 자가 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왜 문어 이름에는 그런 글자가 사용된 것일까? 진짜로 문어는 글을 아는 양반 물고기인가? 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다만, 문어의 뇌 구조가 무척추동물 중 가장 정교하게 발달해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들을 통해 이미 밝혀진 바이므로 다른 물고기들보다 문어의 지능이 다소 높을 순 있을 것 같다. 몇 해 전엔 문어가 축구 경기의 승자를 맞추었다는 소식으로 세인의 관심을 받은 적도 있다. 과연 문어는 높은 지능 수준과 예지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름에 당당히 '문(文)'자를 붙인 것일까?

우리 선조들도 문어를 문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때 이 '글월 문'자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시 한자로는 장어(章魚), 장거어(章擧魚), 희어(僖魚), 망조(望潮魚), 팔대어(八帶魚) 등으로 썼으나 조선에서는 주로 팔초어(八梢魚)로 기록했다. 문어라는 이름은 조선에서 불린 속명(俗名)이었다.

문어는 동해와 남해에서 많이 잡혔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문어는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함경도 37개 군현(郡縣)의 토산물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문어를 구경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이 지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실려 있다.

조금 후에 문어갱(文魚羹·문어를 넣고 끓인 국)을 올렸는데, 문어란 것은 바로 팔초어(八梢魚)다. 그런데 천장(天將·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장수를 일컫는 말)도 역시 난처한 빛을 보이고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이 문어는 우리나라에만 생산되는 까닭에 천장이 처음 보게 된 것이다"고 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가 조선 조정에 맛살조개를 구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맛살조개가 가리합(嘉里蛤)인 줄을 모르고 "우리나라에는 이런 물건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명나라 장수는 조선 조정이 자기를 속인다고 몹시 성을 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엔 조선 조정이 명나라 장수에게 문어로 국을 끓여 대접하자 그 장수는 문어를 처음 본 탓에 먹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과 명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였지만 나는 해산물이 다르고 그 명칭도 차이가 있어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이에 대해 이익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내가 천사 동월(董越)이 지은 조선부(朝鮮賦)를 보니, 그가 직접 단 주석에 "문어는 바로 중국 절강(浙江)에서 나는 망조어(望潮魚)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임진년 난리 때 이여송(李如松) 무리들은 대부분 중국 북쪽 지방의 사람인지라, 남북 거리가 동떨어지게 멀기 때문에 강회(江淮)의 어물을 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에서 문어는 남쪽 지방에서 났던 것 같다. 그러니 북쪽 출신이 많았던 조선 출병 명나라 장수들 가운데는 문어를 처음 보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 계집과 정분난 땡중

담정(藫庭) 김려(金鑢, 1766~1822)는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에서 고지를 통해 문어의 생김새를 설명했다. 문어와 비슷한 고지는 "일어서서 머리를 들면 흰 장삼을 입은 늙은 중(僧)과 같으며 머리를 숙이면 농가에서 벼를 타작하는 다리가 높은 평상(平床)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달이 밝을 때에는 반드시 물에서 나와 모래 사이와 돌밭의 대나무 우거진 숲을 쏘다니며 배회하니 바로 스님의 모습과 같다. 사람들을 보면 놀라 번개같이 도망친다"고 한 진해 어부들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런데 이런 어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지은 시가 재미있다.



고요한 밤 깊은 계곡 달빛이 고운데

문어들 그림자 이끼 낀 물가에 어지럽다.

어촌 계집 정분난 땡중이 온 줄 알고

바쁘게 침상에서 내려와 사립문 열어 주네.



어촌 처녀가 밤중에 배회하는 문어를 정분난 땡중으로 오인해 사립문을 열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어부들 사이에 스님이 밤중에 배회하는 존재로 회자되는 것을 보면 이 어촌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여하튼 문어의 생김새와 습성을 땡중에 빗대 명료하게 설명해낸 그의 재치와 해학이 퍽 인상적이다.

문어는 쫄깃한 식감에 맛도 좋지만 건강에도 그만이다. 지방은 적고 단백질이 많아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으며,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 피로 해소를 돕고 혈중 콜레스테롤도 떨어뜨리는 자양강장의 대표적 식품이기도 하다.

'규합총서(閨閤叢書)'를 보면 "(문어의) 알은 머리, 배, 보혈에 귀한 약이므로 토하고 설사하는 데 유익하다. 쇠고기 먹고 체한 데는 문어 대가리를 고아 먹으면 낫는다"고 했다. 또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도 "(문어는) 성질이 평(平)하고 맛이 달고 독이 없다"고 했다.

섭씨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찜통더위에 잠시만 밖에 있어도 금세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온몸은 땀에 젖는다. 그 어느 때보다 기력을 잃기 쉬운 요즘, 다양한 문어요리로 원기를 회복해 보는 어떨까. 단, 식중독은 각별이 주의하시길 바란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