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장시장에 형성된 콩국골목
- 우무도 한그득 넣어 띄워 팔아
- 젤라틴 성분있는 우뭇가사리
- 기장이 최대 생산지임을 방증

- 섬유질 많은데 열량은 낮아
- 다이어트 식품으로 사랑받아
- 손 많이 가는 빨간 '기장우묵'
- 끼니 대신 먹던 보릿고개 음식

- 미숫가루·오이냉국에 넣거나
- 메밀·비빔국수와 말아도 별미
- 콩고물에 굴리면 인절미 같아


여름철 전통음료를 꼽으라면 화채, 식혜, 수정과 등도 있겠지만, 영양가 높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콩국도 그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동동 뜬 우무채와 함께 목젖이 시원하도록 훌훌 들이켜는 얼음콩국은, 살근살근 '우무' 씹는 재미 또한 더해져 여름더위를 단번에 날려준다.

우무로 만든 음식과 디저트. 과일, 채소, 우무를 섞은 우무샐러드(왼쪽 위)부터 우무청각오이냉국, 우무미숫가루, 우무콩국, 콩고물에 공글린 우무, 우무편채 등 다채롭다. 최원준 사진제공

콩국에 왜 '우무'가 들어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무의 찬 성질이 콩국과 함께 체열을 내려주기도 하거니와, 여름 갈증에 급히 마시다 사레들지 말라는 조상의 지혜로움 또한 숨어있다. 맛과 영양뿐 아니라 마실 때의 재미와 여유를 더해주는 음식이 바로 콩국이다.

기장시장. 이곳은 유별나게 콩국집들이 많다. 집단화된 콩국골목이 있을 정도이다. 곳곳에 우무를 켜켜로 쌓아놓고, 차게 식힌 콩 국물에 우무를 넉넉히 넣은 콩국을 팔고 있다. 이는 기장이 우뭇가사리의 부산 최대 생산지라는 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뭇가사리는 우뭇가사리과에 속하는 홍조류의 해조류이다. 수심 20~30m 바위에 붙어 자라는데, 바닥이 모래로 이뤄지고 해수의 소통이 잘되는 곳에 군집을 이룬다. 부산은 기장 지역이 대표적인 군락지이다.

우뭇가사리를 씻어 햇볕에 말린 후 고우면 젤라틴 형태의 '한천'이 생산되는데, 이를 '우뭇가사리 묵'이라 하여 '우무'라 한다. 냉채, 냉콩국, 무침 등 차갑게 해서 먹는 요리에 사용되며, 섬유질이 많은 대신 열량은 거의 없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기장에서는 이 우무를 직접 만들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곤 했다. 그러나 워낙 일손이 많이 가는 일들이라, 요즘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경우가 적다고 한다.


'손이 백 번도 더 가는' 조리 과정

빨간색 기장우묵과 반투명의 우무.

"아이고~! 말도 마이소~! 이 우묵은 일손이 백 번도 더 들어간다 아입니꺼. 시어마시가 수돗물 값도 안 나온다고, 하지 마라, 하지마라~ 칼 정도라예." "와 아이라~! 우뭇가사리를 물에 불리고 말리기를 네댓 번 해야 되제, 일일이 불순물 손으로 떼야 되제, 모래는 방망이로 뚜디리서 털어내야 되는데, 요새 누가 이런 일을 하겠는교?" 기장시장 우무 파는 아낙네들이 손사래를 치며 하는 말이다.

기장에서는 이 '우무'를 청각, 까시리, 오이 등과 함께 넣어 '우무냉국'도 해먹고, 갖은 야채와 함께 양념장에 버무려 '우무무침'을 해먹기도 한다. 각종 과채와 함께 마요네즈 등 드레싱에 무쳐 먹는 '우무샐러드'는 요즘 들어 인기란다.

저장음식으로, 우무를 간장에 담가두었다 겨울에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서 먹는 '우무장아찌'도 특색 있는 음식이다. 여름에는 새콤달콤한 비빔양념장에 야채를 채 썰어 비빔냉면처럼 해먹기도 한단다. 입이 심심할 때면 우무를 깍둑깍둑 썰어 마른 콩가루에 무쳐 먹기도 한다는데, 마치 인절미 같은 맛이 난다고. 콩국 만들기 번거로울 때는 미숫가루를 타 우무와 곁들여 먹기도 했단다.

우무 사이에서 빨간색 우무도 눈에 띈다. 요즘 통 보이지 않던 '기장우묵'이다. '기장우묵'은 우뭇가사리를 된장이나 다시마, 멸치 등으로 우린 육수에 넣고 고우다가, 방아 고추 마늘 파 등을 섞어 굳힌 우무이다.

기장우묵은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끼니 대신 먹던 기장의 보릿고개 음식이었다. 음식의 부재료였던 '우무'를, 집에 있는 갖은 식재료를 털어 넣고 간을 맞춰 끼니로 먹었던 것. 지금은 '추억의 음식'이 되어, 지금 기장우묵을 즐기는 세대를 끝으로 그 명맥이 끊길 수도 있는 음식이다,

반가운 나머지 기장우묵을 팔고 있는 박혜숙(65) 씨에게 "기장우묵, 어디서 만들어서 가져옵니까?" 물었다. "그런 거 와 묻는교?" 하면서도 일일이 대답해준다. "일광 이천리에 사는 아지매가 만든다 아인교. 요새 몸도 안 좋고 만드는 일도 힘들고, 자식들이 말리고 해서 안 할라카네예." 하기야 우무도 손이 많이 가는데, 기장우무는 더 하겠다 싶다.

시장의 몇몇 아낙도 "이제 집에서 기장우묵 만들어 먹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워낙 일손이 많이 가는데다 주변에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굳이 기장우묵을 만들어 먹겠냐는 것이다.


재미난 후식, 색다른 디저트

부산 기장군 기장읍 기장시장 콩국 노점. 우무 재료인 우뭇가사리는 기장 바다에서 많이 난다.

집에서 기장우묵과 우무, 청각 등으로 '기장우묵 요리' 몇 가지를 만들어 맛을 본다. 우선 '우무콩국'. 콩국에 우무를 채 썰어 넣고 얼음 몇 개 띄웠다. 차고 깊은 고소함에 우무가 입안에서 살살 씹히는 것이 꽤 괜찮다.

기장 사람들은 콩국 대신 미숫가루에도 우무를 넣어 훌훌 마셨는데, 달짝지근한 미숫가루에 우무를 더하니 이 또한 색다른 디저트가 된다. 이와 더불어 우무를 깍둑깍둑 썰어 달콤한 콩고물에 궁굴려 먹으니, 고소하고 달콤한 콩고물과 살강거리는 우무가 어울려 아주 재미난 후식이 된다. 은근하게 자꾸 손이 간다.

'우무청각오이냉국'은 바다 향 물씬 나는 청각의 사각거리는 식감에 오이의 싱그러움, 우무에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새콤달콤한 국물과 어우러져 상쾌함이 제대로다. 땡초를 다져 넣어 알싸한 것도 뒷맛을 깔끔하고 개운하게 한다. 메밀국수 등을 말아 먹어도 괜찮겠다.

'우무야채무침'은 오이, 파프리카, 당근, 파, 청각 등 집에 있는 갖은 야채를 채 썰어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린 간장양념장에 버무렸다. 야채의 다양한 식감과 사각거림, 청각 등 해조류의 싱그러운 해감내, 땡초를 넣어 알싸한 양념장과 참기름의 고소함까지 겹쳐, 여름철 최고 별미 반찬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삶은 국수를 비벼 먹으니, 이 또한 여름 별식으로 훌륭하다.

'기장우묵'을 맛본다. 처음에는 약간 가슬가슬하고 밍밍한 것이 별 맛이 나지 않다가, 씹으면 씹을수록 방아 향과 멸치육수, 된장 맛 등이 일어선다. 굵게 갈아 넣은 고추도 씹히고, 다진 다시마 등도 씹힌다. 기장사람들은 이 기장우묵을 그냥 먹거나, 소금이나 초고추장에 찍어먹는다. 개인적으로 참기름을 곁들인 땡초양념장에 찍거나 버무려 먹으니 맛이 한결 더 살아난다. 간을 한 나물이나 해조류에 채 썰어 넣고 함께 먹어도 궁합이 맞겠다.


멋진 지역음식으로 되살릴 만

앞서 얘기했듯 '기장우묵'은 보리흉년에 밥 대신 먹던 구황음식이었다. 집에 있는 모든 것 다 털어 넣고 만들어 먹으며, 힘든 시절을 참고 견디게 했던 음식이다. 보리개떡이나 장떡, 기장의 '까막바리 털털이'처럼 끼니를 잠시 속이는 대용식이었던 것. 그러나 지금은 '추억의 음식'으로 기장시장 한구석에서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일손, 시간, 정성이 삼위일체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슬로우푸드, 기장우묵. 이제 맛깔 진 음식들에게 밀려 이마저도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향토음식은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내포한다. 지역의 모든 정보를 저장하고, 후손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지역음식들이 사라지면,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 보존대책이 시급하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