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이란 무엇인가? 빛이고 에너지다. 동시에 의미이며 상징이다. 고대와 왕조 시대의 색은 사회가 붙인 의미에 갇혀 있었다. 황제와 왕이 입는 색은 엄격했다. 조선 시대 사극에 나오는 왕은 붉은색 곤룡포를 입고 있다. 이 옷은 중국의 신하인 조선 왕이 입는 정복이었다. 황룡포는 중국의 황제만이 입을 수 있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나서야 비로소 황제국의 지위에 어울리는 황룡포를 입었다.

중국 황제가 입은 용포는 정확하게는 자황색이었다. 산뽕나무의 황색 즙액으로 물들인 옷이다. 수나라 때부터 황제가 입기 시작해 당나라 시대에는 신민들이 입는 것을 금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자황색은 천자만이 사용하는 복색이었다. 그리하여 자황색은 중국 문화에서 권세를 대표하는 정치의 색이 되었다.

서양도 상황은 비슷했다. 근대 이전에 어떤 색깔들은 신분의 징표이고 부유한 상류층의 문화적 특권이었다. 군주와 귀족들은 군청색과 보라색과 같은 값비싼 색들을 사용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회색과 갈색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술사가인 한스 페터 투른은 오랜 세월 동안 '화려한 소수'는 '유복한 소수'였다 라고 말했다. 따라서 신분제를 폐지한 근대는 색의 해방 시기이기도 했다.

저자 황런다는 '중국의 색'에서 자황색을 비롯한, 중국의 문화에서 중요한 100가지 색의 유래와 의미를 하나하나 따져본다.

'비색'을 보자. 비색은 고려청자의 빛깔로 유명하다. 중국에서도 비색은 귀한 색이었다. 중국에서 비색은 오대십국 시기에 등장했는데 월요에서 구운 명품 자기의 색이었다고 한다. 비색 자기는 오직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도 한다. 갑골문에 처음 나타난 백(白)은 밝은 태양색이었고 음양에서 양을 대변하는 색이었다. 공자의 색채관과 사상에서 백색은 꿋꿋하고 올바른 몸가짐을 상징했다. 동시에 백색은 사람이 죽었음을 상징하기도 해 백색 복식을 입으면 지극한 슬픔을 표시한다고 했다. 우리의 색 관념도 그와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 현대사와 밀접한 '홍(紅)'은 어떨까. '홍(紅)'은 상나라 말기에 처음 쓰이기 시작했으며 대략 7세기 당나라 때가 되어 독자적인 색 명사로 눈부시도록 선명한 홍색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홍색은 중국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서양에서 홍색은 선명한 피, 위험, 급함 등을 상징하지만 중국에서는 지위, 권력, 진취적 기상, 긍정, 낭만 등 밝고 선명함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단심(丹心)은 고상한 정조와 애국심과 열사를 뜻했다. 대장정에 나선 중국 공산당의 군대는 홍군이었고 문화대혁명 때는'조반유리'를 외치며 홍위병이 나서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붉은 기를 지키겠다는 '적기가'는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노래였다.

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붉은 색을 꺼렸다. 붉은 색과 연결된 '빨갱이'라는 낙인은 정치적 반대자를 억누르는 주술의 용어였다. 그러나 색의 의미와 이념 모두 영원하지 않아 붉은색은 이제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의 상징색이 되었다.

그럼 지금 한국 사회를 대변하는 색은 무엇일까? 혹시 침체와 암담함을 상징하는 회색은 아닐까.

소설가·작가의 드론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