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병원 두 노인 사랑이야기
-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작
- 파격 실험 없이도 '명불허전'

천하의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울고 있었다. 지난 28일 가마골소극장 30주년 기념작 '첫사랑이 돌아온다'의 첫 공연이 끝난 직후였다. 연극은 무사히 끝났고 관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배우와 사진을 찍기 위해 무대 앞에 늘어섰다. 객석 맨 뒤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그의 눈물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연극 내용도 그렇고…지금 이 상황이…." 우문(愚問)이었다. 그는 1994년 연희단거리패 우리극연구소 1기 배우로 2008년부터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있다. 30년은 그녀의 연극 인생과 궤를 같이 한다. 지난 세월의 숱한 기억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가다 문득 그녀의 눈가에 머물렀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의 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희단거리패, 가마골의 연극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첫 사랑이 돌아온다'는 다시 한 번 명불허전(名不虛傳)을 증명했다.

	지난 28일 한결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끝낸 연극 '첫 사랑이 돌아온다' 출연진과 제작진. 앞줄 왼쪽부터 김철영 김소희 대표 이윤택 감독 김미숙 등.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공연이 끝난 뒤 관객 인사에서 "처음으로 편안한 연극을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게릴라'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파격적인 실험 연극에 앞장서왔던 기존 스타일과는 분명 다르다. 그의 명성만큼 화려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변화에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 연극의 배경은 치매 환자들이 모인 요양병원이다. 주인공 할머니(김미숙)가 자유를 찾겠다고 자신을 떠난 남편을 "개새끼"라고 비난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자신의 이력을 끌어와 남편을 "시인, 신문기자, 출판사 편집주간"이었던 이로 묘사한다. 이른바 '셀프 디스'(자학)다.

숙련된 배우들의 호흡 표정 몸짓이 빚어내는 리듬이 이 연극의 힘이었다. 유행가 '100세 인생'을 부르며 단체 체조하는 장면, 바바리를 입고 스카프를 두른 할머니 할아버지(김철영)가 종종거리며 '썸'을 타는 모습, "오 주여"를 부르며 기도하다 "오동추야 달이 밝다"로 이어지고 마는 의사(양승일)의 엉뚱함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내용적으로도 추리적 요소를 가미해 끝까지 궁금증을 유지시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주장하고 할머니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할머니가 자신이 할아버지의 첫사랑이라고 기억을 '재구성'하는 대목은 이 연극의 백미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외롭게 살았던 아픈 기억을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치환하는 것. 극 중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아름다운 상상, 혹은 착각?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한편 관객은 묻는다. 나는 저 순간, 그러니까 죽음을 앞두고 다른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해도 마지막 하나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 나는 그 기억이 될 오늘을 살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좋은 연극은 관객의 가슴에 질문을 남긴다.

▶3일까지 금요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4시 부산 연제구 거제동 한결아트홀 일반 3만 원 문의 (051)868-5955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