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에서 말하는 '개벽'은 기울어진 지축이 바로 선다든지 땅이 꺼지고 바다가 솟는 천지개벽이 아니다.

"기울어진 지구의 축이 바로 서면 대재앙으로 이어진다. 인류의 절반 이상은 죽어나고, 바다와 육지 면적이 역전되어 육지의 면적이 3배로 늘어난다. 한반도는 지구의 주축 부분에 위치하여 가장 적은 피해를 입는다. 중국 본토의 균열로 만주와 요동 일부가 우리 영토가 되고, 일본은 물에 잠겨 독립을 유지하기에도 너무 작은 영토밖에 남지 않는다. 땅은 넓어지고 인구는 적으니 세계는 평화로워지고 한국은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이 된다!"

학승으로 이름을 날렸던 탄허스님 같은 이도 이런 주장을 폈다. 개벽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희망찬(?) 예언일지 모르지만, 결국 일본의 식민지배로 괴로움을 당한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심리적 응징일 뿐이다. 바로 잡아야 할 것은 기울어진 지축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우리 마음가짐이다.

개벽. 한자로는 열 개(開), 열 벽(闢)이니 열고 또 연다는 뜻이다. 막히고 닫힌 것을 연다는 뜻이다.

동학 3대 교조 의암 손병희(사진)는 개벽을 이렇게 이해했다. "개벽이란 하늘이 떨어지고 땅이 꺼져서 혼돈한 한 덩어리로 모였다가 두 조각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개벽이란 부패한 것을 맑고 새롭게, 복잡한 것을 간단하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재판정에서 왜 난리를 일으켰냐는 물음에 탐관오리 조병갑의 가혹한 정치에 "모든 인민이 참고 또 참고 견디다가 부득이 들고 일어났다"고 답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바로 개벽이다. 올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을 앞두고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은 불평등한 세계 현실을 통계로 보여주며 선언했다.

"1%를 위한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현재의 시스템은 다수의 이익 대신 상위1%와 그들의 지지자를 위한 정책 선택의 결과로 도래하였다. 이제는 이 붕괴된 시스템을 거부해야 할 때다. 현상유지는 답이 아니다."

이윤에 눈먼 경제 체제를 위해 사람도 편치 못하고 제명에 살지 못하고 죽어난다. 사람이 죽어나는데 짐승인들 편안할 리 없다. 애완용 개나 고양이가 돈벌이가 되니 동물학대는 그만큼 극성이고, 화풀이로 키우던 애완견도 잔인하게 죽인다. 해월 최시형이 말한 개벽의 징후다.

"이 세상의 운수는 개벽의 운수라. 천지도 편안치 못하고, 산천초목도 편안치 못하고, 강물의 고기도 편안치 못하고, 나는 새, 기는 짐승도 다 편안치 못하리니, 유독 사람만이 따스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으며 편안하게 도를 구하겠는가."

설사 지축변동으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의 가르침과 해월이 남긴 발자취는 개벽시대를 사는 우리의 지침이다.

해월 선생은 평생을 오늘이면 이곳, 내일이면 저곳으로 쫓기는 지명수배자로 살면서도 잠깐도 쉬지 않고 밭을 갈았다. 씨앗을 뿌리면서 나무 짐을 졌고, 밤이면 짚신을 삼고 멍석을 내기도 하고 과실나무를 심었다. 내일이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터인데 무엇하려 그러냐는 제자들에게는 "우리가 떠난 후에 이곳에 오는 누구라도 먹고 이 물건을 쓴들 무슨 안 될 일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천도교 '신인간'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