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조 가르치는 부산 거학초
- 학부모들도 동아리 꾸려
- 매주 화요일 창작교실
- 부산시조시인협회 회원들은
- 무보수 특강으로 봉사활동

- "고리타분할 줄 알았는데
- 정형시 매력에 푹 빠져
- 아이와 함께 익히니 소통도"

"지난주에 내드린 과제가 있죠? 달에 관한 시조 써오기였습니다."

	지난 21일 부산 연제구 거학초등학교 책누리도서관에서 열린 '거학 어머니 시조교실'에서 수강생들이 정희경(왼쪽) 시조시인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강사인 정희경 시조시인의 이 한마디에 '수강생들'이 긴장할 줄 알았다. 말하자면 이 말은 '지금부터 숙제검사를 하겠습니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든 숙제검사는 긴장을 부르기 마련 아닌가. 가만히 분위기를 살폈다. 분명히 긴장들 했다.

그런데 어라? 한 사람 한 사람 '숙제'를 발표하면서 기류가 슬슬 바뀌어간다. 지난 일주일 동안 가족을 위해 밥 안치고 빨래 널면서 짬짬이 썼을 시조를 발표하는 모습이 의젓하다. 강사나 다른 수강생이 작품에 관해 질문하면 답변이 일촉즉발로 나온다. 생활 감정을 담은 것부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까지 작품이 다양하다. 그렇다! 엄마들이 시조를 즐기고 있다.

■엄마들 모여 시조를 읽고 쓰니

	시조 보급 활동에 나선 부산시조시인협회 전연희 회장. 서순용 선임기자

지난 21일 오전 10시 부산 연제구 거제동 거학초등학교(교장 권상원)의 책누리도서관.

지난 3월 29일 시작해 매주 화요일마다 열어온 학부모 동아리 활동 '거학 어머니 시조교실'의 13주차 수업이 막 시작한 참이다. 부산시조시인협회(회장 전연희)에서 창작과 이론이 모두 탄탄하기로 이름난 정희경 회원이 '책임강사'를 맡되, 협회의 중진·원로 회원이 수시로 특강에 나서는 탄탄한 짜임새다.

90분짜리 수업이 시나브로 무르익자, 수강생이 과제로 써온 시조를 발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서로 접어들었다.

이날은 9명이 발표자로 나섰다. 주어진 소재는 달이었다. 여기에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서로 결이 많이 달라서 대비가 되는 작품 두 개만 골라봤다. 거학초등학교 6학년 김현진 학생의 엄마 이지연 씨는 '친구'라는 제목의 서정적인 단수시조를 썼다.

'오래된 너의 이름 나직이 불러보면 / 어느새 환한 달빛 내 앞에 앉아있다 / 그리움 진한 커피에 담아 달빛으로 타본다'.

"달빛으로 커피를 탄다는 발상으로 그리움을 표현한 점이 좋다"는 칭찬이 나왔다.

5학년 백지원 양의 학부모 신광원 씨의 '보름달이 되고 싶은 초승달'은 생활시조라 이름 붙여도 좋을 만큼 생활 감정을 생생히 담았다.

'밤하늘 가득히 뜨는 이름 모를 별들보다 / 수없이 떨어지는 바람 같은 별똥별보다 / 딸들아 너희 인생은 보름달이면 좋겠다 // 부모 말 따른다면 힘든 일 없을 텐데 / 어째서 부모 마음 이토록 헤집어 놓는지 / 딸들아 부모의 마음 헤아리면 안 되겠니'.

"딸들과 투닥투닥 신경전을 벌이다 시상이 떠올라 쓴 시조"라는 신 씨의 '비법공개'에 강의실에 와그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부산 시조인들 팔 걷고 도와주고

거학 어머니 시조교실은 작은 생활예술의 현장으로 보이지만, 실은 폭넓고 짜임새 있는 협업의 산물이다.

먼저, 올해 초부터 부쩍 더 활발히 시조 활성화와 보급에 나선 부산시조시인협회의 행보(딸린 기사 참조)와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이 시조교실에는 한국시조학회장을 지낸 임종찬 부산대 명예교수, 백승수 전 부산시조시인협회장과 등단 24년 차 우아지, 등단 12년 차 천성수 시조시인이 특강을 했다. 전연희 회장도 줄곧 현장을 지켰다. 모두가 무보수 봉사활동이다.

한국 시조계에서 위상이 높은 부산 시조단이 아낌없이 정성을 쏟는 모습이다. 협회가 거학 어머니 시조교실뿐 아니라 다른 현장으로 시조 활성화 활동의 폭을 넓힐 때 이 같은 구성은 하나의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시조를 매개로 어린이를 위한 '우리말 사랑, 한글 사랑' 교육을 펼치고 있는 거학초등학교의 노력도 함께 빛을 발한다. 시조시인이며 부산시조시인협회 회원인 이 학교 권상원 교장은 "창의적 체험활동 교재에 학년 수준에 맞게 옛시조, 현대시조, 어린이시조를 넣어 어린이들이 익힐 수 있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는 10월 9일 한글날에는 시조백일장을 열 계획이다. 예술교육과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 교장은 "연제구가 시행하는 '책 읽는 으뜸학교' 사업의 후원을 받아 시조교재도 보급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도 익히니 예술교육 저절로

시조를 배우고 쓰는 엄마들에게 지난 3개월의 시조 동아리 활동은 어땠을까.

이 시조교실에는 대개 15명 안팎의 학부모가 참가했는데, 이날은 종강(7월 12일)을 앞두고 수강생 엄마들이 "이 수업 좋다, 아깝다, 한 번 들어보기라도 하라"며 홍보 활동을 펴 30여 명이 참가했다. 1학년 반시우 학생의 엄마 정안희 씨는 "처음엔 '시조라니,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형시 특유의 형식을 조금 익히고 나니 점점 매력이 커졌어요. 시조를 쓰려고 관찰하고 달리 보는 습관을 들이니 아이와 소통도 잘 됐고요."

6학년 공규범 군, 3학년 진희 양의 엄마 천선아 씨는 "아이들도 배우고 저도 익히니까 공유하는 게 생겼다"며 장점을 설명했다. "아이들은 주제나 소재를 주면 순식간에 한 수가 나오더군요. 형식을 알면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정형시의 장점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엔 둘째 아이가 쓴 시조 7편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줬어요. 아이 인생의 첫 시조집인 셈이죠."

"딸과 엄마가 시조 쓰느라 식탁에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남편이 좋아해요. 고마운 계기죠."(5학년 백지원 양 엄마 신광원 씨)

참고로, 시조는 우리 전통의 정서와 운율을 잘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시조의 경우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다.

이 기사를 시조의 종장 형식으로 마무리하면 이렇겠다. '아이야, 시조 배우자 엄마아빠 더불어'.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