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우리의 인생 철학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안드레아는 글쓰기를 '놀이'로 여겼지만 나에게 그것은 '일'이었다. 가치관과 생활태도도 대조적이었다. 안드레아의 태도가 3할이 세상에 대한 시니컬함, 2할이 농담, 5할이 진지함이었다면, 나는 8할이 진지함, 나머지 2할은 지성에 대한 회의였다. 안드레아는 나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늘었고 나는 그 애를 진지하게 연구했다. 열여덟 살 사람을 알려면, 처음부터 배워야 하고 자신을 온전히 비워야 한다. (엄마 룽잉타이)-본문 중에서

룽잉타이는 대만의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대만의 민주화를 이끈 '야화집'으로 살해 위협을 받고 독일로 떠난다. 거기서 만난 독일인 남편과 사이에서 아들 둘을 뒀던 그는 마잉주, 당시 타이베이 시장의 요청으로 대만으로 돌아오고, 결국 아들과는 4년 동안 떨어져 살게 되었다. 그동안 공백은 룽잉타이와 열여덟 살 아들 안드레아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룽잉타이가 아들 안드레아에게 편지 쓰기를 제안했다. 편지를 통한 둘의 대화는 3년 동안 이어졌다.

아들 안드레아는 독일에서 자랐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콩에서 대학을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열여덟 살부터 3년 동안 엄마 룽잉타이와 주고받은 편지가 잡지에 연재되고 '사랑하는 안드레아'로 나왔다. 그사이 서른 살이 된 그는 홍콩에서 재무회계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 열여덟 살 아이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만 들여다볼 뿐,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부모의 말에 귀를 열려고 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한다. 어쩌다 만나질 땐 어색한 얼굴로 대하고 이내 서로를 외면한다. 한 집에 살면서도 대화가 없고 가끔씩 묻는 질문엔 차가운 단답형의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부모는 다가가기를 열망하지만 아이와 대화의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시기이다. 지난날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열여덟 살 사람의 삶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안드레아 역시 처음으로 자신의 엄마를 알게 되었다. 3년 동안 바다 위 수기신호로 별을 응시했고, 달을 만끽했다. 뭘 더 욕심을 부리겠는가?" (엄마 룽엥타이)-본문 중에서

"시간이 얼마쯤 흐르고 나서야 문득 서로 편지를 나눈 것이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아차렸어요.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냥저냥 살아가면서 날마다 어정쩡한 안부만 반복해서 물었겠죠? 그래서 지금 엄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요, 엄마 감사해요. 저에게 이 '소임'을 주셔서 고마워요. 엄마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아갈 '소임'요" (아들 안드레아)-본문 중에서

이 책은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개별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그리고 부모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 아이를 떠나보내는 심정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그렸다. 대만인 엄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의 혼혈아. 그들이 나눈 대화는 일상의 이야기를 넘어서 동서양 문화나 시대의 담론을 아우르는 대화라 생각된다.

개성이 강한 엄마와 18살 아들, 소통의 갈등을 편지의 대화로 풀어냈다. 더러는 불협화음이 불거지기도 하고 스타카토로 끊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상대방의 목소리에 따뜻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름다운 연탄곡을 세상을 향해 연주했다. 칸타빌레, 칸타빌레로.

오은주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