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의 '4등'이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최고작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의 관람을 미뤘던 것은 공익 영화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가령, 나는 대개 공익을 준수하지만 섬기지는 않는 편이며 지킨다 해도 내가 불편해지기 싫어서거나 괜한 잡음이 일어나는 것이 귀찮아서일 것이지 그것에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새겨서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무엇보다 공익은 옳지만 그 옳음을 강조할 때 조금 지루하다.

영화 4등 스틸컷

왜 숱한 광고 중에서도 독창적인 것으로써 유달리 공익광고가 많을까. 공익이 지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광고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금연광고에서 담배를 찾으며 "폐암 주세요"라고 말하도록 하는 것은 그 폭력적 수사학이 "금연하세요" 라는 지루한 전언보다 효용성이 높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안전띠를 매지 않은 운전자가 차에서 내릴 때 사람 대신 개로 변하여 내리는 교통법규 준수를 위한 공익광고의 익살스러운 수사학도 그 지루함을 깨기 위한 역설이다.

'4등'의 공익성 강조에는 미묘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이 영화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프로젝트이고 인권이라는 문제 특히 인권을 침해하는 교육 체벌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 영화의 두 주인공(광수, 준호)이 체벌받게 되는 경위가 확연히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대목이 흥미로웠다.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니 체벌의 경험은 대개 두 가지다. 체제의 규칙을 어겼을 때(복장불량, 지각, 땡땡이 등) 혹은 체제가 목적의식을 강조할 때(낮은 성적 혹은 떨어지는 성적 그러므로 오직 성적).

훗날 준호의 코치가 되는 어린 광수는 물론 크게 보아 국가 승리(국가대표)라는 지나친 목적 의식의 희생자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당면한 이유로만 본다면 그가 합숙소로의 귀가 시간을 여겼다는 단순한 규칙 위반 때문에 체벌이 발생한다.

이 장면이 긴장감이 넘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모종의 체벌이 예감되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광수가 아저씨들과의 놀음판에 머물면서 지연을 거듭하며, 즉 규칙을 위반해가며 그 도래할 결과 자체를 자신의 내기의 몫으로 두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호의 경우는 다르다. 이 아이는 성실하게 규칙을 지켜도 매를 맞는다. 광수가 규칙을 위반하여 체벌을 당한다면 준호는 규칙을 지켜도 1등이라는 목적의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성적 부진의 이유로, 체벌을 당한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규칙위반과 목적의식 부족이 체벌의 모든 경우라고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은 체벌의 경우와 결과가 언제든지 다를 수 있다는 그 차이를 오히려 지적하고 싶었다. 체벌은 나쁘지만 그 체벌의 경우와 결과는 그때마다 다르게 나쁘다. 이것이 이 영화의 전언이라면 전언이다.

이 영화에는 지루한 공익적 확신이 없다. '4등'은 체벌은 패악이다 혹은 패자도 아름답다 등의 공익성이나 상투적 미덕을 재론하지 않고 다른 것을 제시한다.

체벌이라는 반인권적 훈육을 경험할 때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운명이라는 잠재와 비지의 영역을 공존시켜 제시한다. 바로 그것 때문에 오묘하고 활기찬 영화가 된다. 공익영화의 외양을 썼는데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운명에 대한 이 영화의 이러한 태도 때문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