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인이었던 매니저 소윤석
- 김추자 집안 교제 반대에 앙심
- 얼굴에 소주병으로 상처 내
- 1년간 무대 못서고 치료 받아

- 이후 마련된 컴백 공연장 화재
- 대한극장서 가까스로 리사이틀
- 3만5000명 관객 모아 재기 성공

1970년 11월 발표했던 '님은 먼 곳에'의 히트 이후 1971년 8월 신중현의 곡 '거짓말이야'가 유신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때쯤에 김추자는 어처구니없는 구설에 휘말리게 된다. 김추자가 무대에서 연출하는 특유의 손짓이 간첩에게 보내는 신호이고 김추자가 낀 반지는 무전기라는 소문이 나돌게 된다. "수상하면 다시 보자"는 간첩에 대한 경각심에서 생긴 과도한 공안적 상상력이 빚어낸 해프닝이었지만 이것은 김추자의 위치가 그만큼 독보적이고 인기가 절정의 상태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1973년 서울 대한극장에서 열렸던 컴백 리사이틀에서 화려한 율동을 선보이는 김추자. 김형찬 제공

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는 1971년 7월 부산 공연 불참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추자에게 1971년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연예활동 중지 징계를 내린다. 김추자는 3개월간 은둔 끝에 12월 9일부터 12일까지 시민회관에서 대대적인 김추자 컴백 리사이틀을 기획했다. 신세계쇼단이 기획하고 MBC TV가 후원한 이 쇼는 송창식, 이현, 은희, 점블시스터즈 등 10여 팀의 가수와 14인조 신중현악단이 출연하는 호화쇼였다.

그런데 쇼를 나흘 앞둔 12월 5일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김추자의 매니저 소윤석은 국가대표 아마추어 레슬러 출신으로 신중현 사단에 가수로 들어왔다가 김추자의 데뷔 음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후 김추자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김추자 집안에서는 소윤석이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징계까지 받게 되자 김추자에게서 소윤석을 떼어놓으려 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소윤석은 김추자를 만나러 와서 소주병으로 그녀의 얼굴을 그어 수백 바늘을 꿰매게 하는 상처를 입혔다. 사달이 난 쪽은 오히려 쇼 흥행주 쪽이었다. 수백만 원을 들여 준비한 쇼가 망할 지경에 놓인 것이다. 연기할 수도 없어서 공연은 김추자 없이 강행됐다. 쇼가 시작된 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1회 공연의 피날레가 시작하기 조금 전이었다.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김추자가 등장했다. 이와 함께 그의 히트송 '님은 먼 곳에'가 잔잔한 백뮤직으로 흘렀다.

"지난 허물은 모두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연 약속을 어긴다, 제멋대로다, 하는 것은 모두 제가 아직 어린 탓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어린 탓으로 돌리고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번에 또 한 번 참변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꼭 노래하고 싶었던 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나 제 건강이 회복되는 날, 다시 여러분 앞에 오겠습니다. 저는 평생 노래를 부르다 노래 속에서 죽을 결심입니다." 우렁찬 박수, 손의 상처 때문에 케이프 자락 속에 두 손이 기브스되어 있는 김추자는 손을 움직여 눈물을 훔칠 수도 없어 한쪽 눈에서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퇴장하는 김추자의 뒷모습을 향해 관객들은 그가 노래할 때보다 더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노래도 얼굴도 없는 김추자', 주간여성, 1971. 12. 22., 16~17쪽

	현재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던 서울 시민회관. 김추자의 컴백 리사이틀을 앞두고 화재가 발생했다.

김추자의 형부가 주치의를 졸라 간호사를 대동하고 김추자를 출연시킨 것이었다. 이런 상태로 김추자는 하루 3회씩 마지막 날까지 무대를 지켰다. 그런데 이때 새로운 신인이 기회를 잡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쇼 흥행주 쪽은 김추자의 대타로 김정미라는 신인 여가수를 출연시켰다. 그녀는 신중현이 '제2의 김추자'를 생각하고 키우고 있었던 카드로, 당시 여고 3학년이었다. 그녀의 춤과 노래도 김추자 못지않게 섹시했고, 평소에 김추자의 노래를 즐겨 부른 터라 대타로는 적격이었다.

김추자는 1년 가까이 쉬면서 치료한 다음 1972년 11월 4일 MBC TV의 'MBC 그랜드쇼'에서 재기의 무대를 마련했다. 이때 이미 1964년 개국 때부터 주말 TV 쇼의 왕자로 군림하던 TBC의 '쇼쇼쇼'는 비상이 걸렸다. 'MBC 그랜드쇼'와 같은 날 저녁에 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맞불을 놓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TBC는 200명의 출연진을 동원한 호화 쇼를 꾸며 대응했지만 김추자 한 명의 위세를 당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김추자의 위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사고 이후 1년 만에 다시 TV 앞에 선 김추자의 모습은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예전 예쁘장한 미소는 사라지고 정색한 얼굴로 노래했으며 문제가 되었던 야릇한 손동작은 쓰지 않고 노브라의 차림으로 허리를 주로 쓰는 육감적인 춤동작을 선보였다. 예전의 앳된 모습은 벗어버리고 여자로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섹시하고 도발적인 무대를 선보인 것이다.

김추자의 불운은 불의의 피습으로 그치지 않았다. 1972년 12월 7일에 시민회관에서 열기로 계획했던 김추자의 재기 리사이틀은 화재로 공연장이 전소함으로써 무산됐다. 1973년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대한극장에서 열렸던 '김추자 컴백 리사이틀'에서 3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김추자는 피습 이후 1년 4개월 만에 어렵게 재기할 수 있었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