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아들이 컴퓨터 게임을 말리는 아버지를 살해했다. 지난 3월 사건이다. 강원랜드에서는 도박으로 재산을 잃은 많은 사람이 노숙자로 떨어진다. 그들은 한탕을 노리며 카지노를 벗어나지 못한다. 중독이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악명 높은 아편 사용자였다. 아침이면 와인에 아편 한 조각을 녹여 쭉 들이켰다.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가 통치할 즈음부터 아편은 로마인의 기분 전환용 약물로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312년 경 로마인은 793개 상점에서 아편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만이 아니다. 야생 동물도 약물에 도취한다. 새, 코끼리, 원숭이는 땅에 떨어져 자연 발효를 거쳐 알코올을 만들어낸 과일과 딸기를 열심히 찾아다닌다. 시베리아 순록은 환각 작용이 있는 선홍색 버섯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킨 뒤 방향을 잃고 비틀거린다.

쾌감은 인간에게 필요하다. 음식과 섹스가 즐겁지 않다면 인간은 오래전에 멸종했을 것이다. 쾌감은 우리 삶에 생기를 준다. 뇌의 쾌감 회로는 달고 기름진 음식, 마약에 활성화된다. 내측전뇌 신경회로가 반복해서 쾌감에 노출되면 구조적으로 변화한다. 모든 중독의 핵심에는 뇌 쾌감회로의 변화가 놓여 있다. 생쥐 뇌의 쾌감회로에 전극을 꽂은 실험을 보자. 스위치를 누르면 생쥐는 쾌감을 얻는다. 이제 생쥐는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죽을 때까지 쾌락의 스위치를 누를 뿐이다.

중독 종류는 다양하다. 인간은 운동에도 중독된다고 한다. 이 역시 니코틴, 음식, 도박과 같다. 운동은 쾌감 회로를 활성화한다. 운동 중독자들은 약물 중독자와 동일한 특징을 나타낸다. 내성과 갈망이 생기고 운동을 끊으면 금단현상을 일으킨다. 마라토너는 달릴수록 기분이 상쾌해지는 '러너스 하이'라는 도취감에 사로잡힌다. 그럼 운동은 선일까? 악일까? 적당한 운동이 필요하다. 유교가 중용을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가 선하다고 여기는 행동들도 뇌의 쾌감회로를 활성화한다. 명상이나 기도, 자선과 기부조차도 인간의 쾌감을 자극한다. 자선 중독과 도박 중독의 종점은 다르지만 그건 훗날의 얘기다. 지금 당장, 뇌의 쾌감회로는 똑같이 작용한다. "뇌 신경계에서 선과 악은 하나다."

권력은 어떨까? 권력을 잡으면 사람은 왜 그렇게 변해버릴까? 뇌는 놀랍도록 유연한 조직이다. 권력자는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며 쾌감을 얻는다. 쾌감은 다시 뇌의 신경회로를 변화시킨다. 이제 권력자는 권력 없이 살 수 없다. 독재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아니 모든 세계사에서 보는 장면이다.

부산을 포함한 영남 사람이 줄기차게 같은 정당을 찍는 행동은 어떨까?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잘하든 못하든 변함 없이 지지하는 행동을 중독 아닌 무엇으로 설명할까? 영남 사람은 혹시 권력 감정에 취해 자신을 권력자와 동일시하는 중독에 빠진 건 아닐까? 권력 감정은 현실 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이다. 권력 감정은 강력한 마력을 발휘한다. 정치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빠져든다. 모든 중독에는 끝이 있다. 중독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파멸이다. 한국 정치가 그렇다. 영남 정치도 그렇다.

소설가·작가의 드론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