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공연된 필립 글래스 작품 '미녀와 야수'.

- 필립 글래스 작품 '미녀와 야수'
- 소리 없앤 옛 영화 배경으로
- 연주·성악 선보이는 파격 실험
- 시공 초월 콜라보레이션으로

- 성시연 경기필하모닉 개막무대
- 빌데 프랑의 바이올린 협연도

25일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공연하는 성시연(오른쪽) 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 빌데 프랑.

매년 경남 통영의 봄은 '음악의 바다'에 푹 빠진다. 2016 통영국제음악제는 처음으로 2016 세계현대음악제와 함께 열려 음악팬을 더욱 매료시키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개막한 통영국제음악제의 수준 높은 음악 향연은 성시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성 지휘자는 개막공연 '성 금요일의 마법'에서 절도있는 지휘와 표정으로 때론 우아하게 때론 강하게 경기필하모닉과 호흡했다. 성시연 지휘자와 경기필하모닉은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 중 성 금요일 음악'을 첫 곡으로 연주했다.

이어 짙은 연둣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선 노르웨이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빌데 프랑이 화려한 기교와 애절한 선율이 돋보이는 '멘델스존 협주곡 마단조 op.64'를 협연했다. 끝으로 성 지휘자는 마치 여전사처럼 오케스트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끌어내 듯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지휘했다. 거인이 당장에라도 나타날 것 같은 장대한 사운드가 40여 분간 청중에게 전달됐다.

감동이 가시지 않은 관객의 발길은 밤 10시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로 향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팔순의 현대 음악 거장 필립 글래스의 작품 '미녀와 야수'가 시작됐다. 프랑스 시인 겸 영화감독인 장 콕토의 미녀와 야수(1946)가 사운드가 제거된 채 상영되고 그 아래서 마이클 리스먼 지휘로 7명으로 이뤄진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연주했다. 연주단은 신시사이저를 바탕으로 플루트와 색소폰이 주도해 미니멀리즘 음악을 선보였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최소한의 음악적 재료로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해 극적으로 전달하는 소리다. 여기에 성악가 4명이 연주단 양옆에 서서 배우의 입 모양에 맞춰 오페라처럼 노래하고 대사가 끝나면 퇴장했다.

공연 뒤 관객에게 인사하는 필립 글래스.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극 초반 관객들은 영상 속 배우와 연주단 옆 성악가를 번갈아 보게 돼 집중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교한 입모양 맞춤과 영화 분위기에 적절한 논리적인 음악 흐름 덕분에 10여 분 정도가 지나자 영상과 연주단이 융합하는 것이 느껴진다. 음악과 영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영상에 빠져들었으나 음악을 배제할 수 없고 심지어 음악이 영상을 이끌어 간다고도 느껴졌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주제 'Sounds of Tomorrow'답게 과거의 영화와 현대의 음악을 동시에 사로잡은 미래의 소리였다.

작품이 끝나자 필립 글래스와 연주단이 함께 관객에게 인사했다. 공연을 관람한 인제대 오세일 교수(작곡가)는 "영상과 실제 소리가 만나 또 하나의 추상화된 예술을 만들었다. 처음엔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음악과 영상이 서서히 섞이며 또 하나의 시공간이 만들어지는 듯했다"고 설명했다.

26일에는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의 두번째 공연과 바흐 콜레기움 재팬의 '마태수난곡(바흐 작)' 연주가 이어졌다. 27일에는 오케스트라 앙상블 가나자와가 세계적인 첼리스트 마리오 브루넬로와 협연했으며 필립 글래스가 통영국제음악당 플로리안 리임 대표와 토크쇼 '저녁의 대화'를 가졌다.

통영국제음악제는 2016 세계 현대 음악제와 함께 28일 카잘스 콰르텟, 29일 브릿징 컬러스, 다음 달 1일 백건우 리사이틀 등을 차례로 열며 다음 달 3일 독일 거장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이끄는 통영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막을 내린다.

통영=김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