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책을 볼 때나 글을 읽을 때 가까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 멀리 놓고 보면 잘 보이는 것이다. 앞으로도 당겨서 보고, 중간에도 놓아보고 별별 방법을 쓰는데도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조금씩 '퇴화'하고 있구나 하면서 잠깐 우울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돋보기 너머로 멀찌감치 놓고 글자를 보실 때,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을 이제는 내가 하고 있는 셈이다.

연세 드신 분들을 무시하지 말라면서 "너희도 다 늙을 것이다" 라고 간혹 던지시던 어른들의 말씀이 귓가를 맴도는 요즘이다.

시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난시가 있어서 안경을 쓰곤 했는데 동그란 유리알에 의존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언젠가부터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책이나 글씨를 멀리 두고 보게 되는 현상이 근래 더 심해져서 안경점을 찾게 되었다.

요즘 안경점에는 예전과는 많이 다르게 첨단 기계들이 있었다. 시력을 점검하고 눈에 맞는 안경을 고르는 데 그런 첨단 기계의 도움을 받았다. 눈을 측정하려고 매끈한 기계에 눈을 대보니 내가 느끼기에 왼쪽 눈이 오른쪽 눈과는 어딘지 상태가 달랐다. 혼자 짐작으로 아침 공양을 조금밖에 먹지 않아 힘이 없어 그런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점원이 말했다.

"스님, 오른손을 쓰는 사람 왼손을 쓰는 사람이 있지요. 눈도 비슷합니다. 왼쪽 눈보다는 오른쪽 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왼쪽 눈의 기능이 점점 떨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시력에 큰 이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눈도 어느 쪽을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니.

한쪽 눈으로, 내가 편한 대로 세상을 보려 했던 나를 발견하는 작은 계기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나는 단것을 좋아하지 않아 충치가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도 기특해하셨다. 그런데 어느 해 치과에 가니 충치가 몇 개 있다고 의사가 진단을 내렸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늙기 전에는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마냥 젊은 날이 계속될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산다. 그렇게 자만하다가 이미 흘러가 버린 시간, 늦어버린 때를 발견한다.

눈이며 치아며 청년 시절과 다르게 활력을 잃는 이런 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생멸에 관해서. 그리고 간직해야 할 것에 관해서.

이 세상에 고정된 실체는 아무것도 없기에 우리의 육신도 이렇게 하나씩 낡고 허물어지고 끝내는 사라질 것이다.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이런 변화를 마음 속에 새기고 인식하면서 '잃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느낀다.

그것과는 또 다르게 우리가 삶에서 쉽게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도 생각해본다. 거짓 앞에서 진실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현실 앞에서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해진 틀 속에서 자신의 모양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권력 앞에서 순수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왼쪽 눈의 시력을 고정해준다는 안경을 앞에 두고는 한참을 생각해 본다.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대표·대운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