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조형물. 백열등이 모여 기둥을 이룬다. 백열등은 평화를 갈망했던 민중을 상징한다. 국제신문 DB

복지가 형편없고 안보마저 불안하다면 국민은 정부를 믿지 못한다. 안보와 복지는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숙제였다.

공자는 "식량이 풍족하고 무기가 충분하면 백성은 믿고 따른다" 고 했다. 이 말에 자공이 묻고 공자는 답했다. 자공이 부득이하다면 식량(食) 무기(兵) 믿음(信) 세 가지 중에서 우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무기, 식량을 차례로 꼽는다. 그러면서 공자는 "백성이 신뢰하지 않으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는 말을 남긴다.

공자의 이 말을 대부분 안보(무기)나 복지(식량)보다 백성의 믿음이 소중하다는 취지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공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중국의 철학자 이탁오(1527~1602)는 말한다. "먹을 것을 포기한다든지 무기를 포기한다든지 하는 경우는 포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경우다. 무기가 없으면 식량이 있을 수 없다. 무기라는 것은 살상에 사용되는 것이어서 악명을 얻고 있지만, 무기가 없으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으니, 사실은 좋은 것이다."

이탁오는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무기가 없으면 식량이 있을 수 없다'는 문구는 최근 북한의 행보를 떠올리게 한다. 북한은 식량 부족으로 많은 인민이 굶어 죽고 정권에 대한 믿음이 바닥났지만,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은 최근 4번 째 핵실험과 위성 발사까지 했다. 무기를 강화한 북한은 식량을 얻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선생은 달리 보았다. 핵무기, 장거리 미사일, 사드는 무기인데 이런 무기를 두고 해월 선생은 '살인기'라 했다. 사람 죽이는 기계라는 것이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조선 정부는 서둘러 청나라군대를 불러들인다. 그러자 일본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로 쳐들어와 경복궁을 점령한다.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다는 소식에 분격하여 전국 각지에서 군사를 일으킨다.

우세한 무기를 지닌 일본군은 수십 만의 동학군을 학살했고, 청나라도 격파한다. 조선왕조는 망국의 길을 걷는다. 해월은 이 전쟁에서 일본군의 신식 무기의 위력을 보았다. "무기는 살인기"라 한 말은 해월의 전쟁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일본군과 전쟁을 치르기 세 해 전, 해월은 제자들과의 문답에서 예언처럼 말을 남긴다. 동학 한다며 숨어 다니느라 이골이 난 어느 제자가 묻는다. "우리가 다리를 펴고 동학 할 세상이 오긴 옵니까?" 해월은 답한다. "백년 뒤에 저절로 알게 된다. 만국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는 때다."

'만국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는 때'라는 해월의 말씀을 미군 철수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평화를 강조한다. 살인기인 무기를 든 만국병마가 후퇴한다는 것은 평화다. 미국과 중국이 담판한 결과가 보도되었다. 미국 케리 국무장관은 "남한에 사드 배치는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 또 북한이 일정 기간 비핵화에 동의하면 서로 적대적 관계를 종식할 수 있는 평화협정을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이 성사되기를 고대한다. 남한과 북한 당국도 무력에 기댄 대립이 아닌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핵무기든 사드든 모든 무기는 살인기일 뿐이다.

천도교 '신인간' 편집주간